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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출신의 투박한 서풍 40점|간송 박물관서 오원 장승업 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이조 후기의 대표적 화가인 오원 장승업의 진적을 보여주는 『오원전』이 간송 박물관 (서울 성북 국민교 옆)서 열리고 있다 (16일까지).
작고한 간송 전형필씨의 방대한 고 미술품·전적 「컬렉션」을 정리, 공개하는 아홉번째의 이번 행사는, 미술 애호가들에겐 혼치 않은 오원의 진품 40여점을 한눈에 접할 수 있게 해준다.
이번에 공개되는 오원 작품 중에는 『미산유곡』 등 비교적 희귀한 편인 그의 산수도도 포함되어 있어 화제.
대체로 이조의 회화가 한국 특유의 독창적 개성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은 영·정조 시대이후로 여겨지고 있다. 실학 도입 이후의 민족적 자각은 중국화의 전통을 답습해온 화원풍의 「매너리즘」을 탈피하려는 움직임을 낳았다.
중국의 화첩을 떠나 우리의 산수·풍속을 그리는 우수한 화가들이 적지 않게 배출되었는데 오원 장승업 (l843∼97)은 현재 심사정, 단원 김홍도, 겸재 정선 등과 함께 조선말기를 대표하는 기량이 뛰어난 화가로 손꼽힌다.
오원은 무식한 일개 화공에 불과했으나 그의 천재는 조선왕조 5백년에 그에 필적할 사람이 몇명 없을 정도로 뛰어나서 천분이 가는데로 산수·인물·도역·절기·기완·사군자·영모에 통하지 않은데가 없었다고 ..
화조, 신선, 영모를 그린 것이 많은데, 화원풍의 세련된 기교나 문인화의 고담한 사의와는 좀 동떨어진 투박하고 자유 분방한 기질이 다분한 그림들이다. 특히 늙은 중을 그린 오원 특유의 거칠고 능청 능청한 운필은 소박하고도 힘찬 개성미를 지니고 있다.
서민 출신이라고는 하나 속화를 그렸던 일군의 화가들과는 또 다른 영역을 마련했던 그는 속기 없이 트인 화풍으로 어떤 의미에선 가장 한국적인 화가로도 인정되고 있다.
그의 그림에 화발이 전혀 없거나 남이 대신 써 넣어 준 것이 있을 뿐인대, 이는 오원이 글을 못 배운 탓이라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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