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레슬링 선수권 정동구 코치 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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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공산국가는 대부분 경공업 부문에서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상식을 우리는 실제로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 있었다.
경기장과 「호텔」주변에서 외국선수단이나 관광객들을 만나면 소련인 들은 『물건을 바꾸자』거나 『팔아라』고 청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그들의 태도는 은근히 이쪽의 의향을 타진하는 것이지 추근거리며 강청하는 것은 아니었다. 내심의 강렬한 욕망을 짐짓 억제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면서도 흔히 실제가격보다 훨씬 많은 돈을 선 듯 내주며 「카메라」나 「라디오」등을 구해 가는 것을 보면 그들이 외제물건을 얼마나 갈구하는지 짐작이 갔다. 어느 날 「호텔」방까지 찾아온 3명의 젊은 친구들은 우리선수단이 입고 있는 「트레이닝」복을 50「루블」(약3만5천 원)에 팔기를 제의, 우리를 놀라게 하기도. 한 소련인은 『많은 외국관광객들이 출국할 땐 휴대품을 모두 현금으로 바꿔간다』면서 얼굴을 붉혔다.
현지의 제품 값도 당연히 비싼 편. 9일 「민스크」백화점에 갔을 때 내의 한 벌을 7천 원이나 주고 샀다. 우리 나라서는 기껏해야 2천 원 정도면 살 수 있는 것인데 품질은 형편없었다. 다만 채소 등 농산물 값은 한국보다 비싸지 않았다.
서울동대문시장을 방불케 하는 3층으로 된 「매머드」건물인 「민스크」 백화점안의 상품들은 식료품이나 자질구레한 가정제품이 대부분, 기념으로 살만한 것이 없었다. 단 한가지 옛날 우리의 할머니나 어머니들이 가지고있던 싸리·대나무 함지 같은 것이 고색 창연하게 즐비, 사뭇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눈길을 끌어 실소를 자아냈다.
「민스크」거리엔-소련의 어디에나 마찬가지지만-술집이 없었다. 외국관광객이 드나드는 「호텔」에도 특별히 「바」같은 것을 만들어 놓지 않았다. 소련인들의 술집은 바로 대중식당. 우리가 들어가 본 두어 군데의 식당은 밤이 되면 조그맣게 꾸며진 무대에서 「밴드」가 울리고 이 음악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도 하며 한데 어울려 춤도 추어 대중의 유희장으로 변했다.
「러시아」고유의 민속음악이 흐르는가 하면 장발 청년과 「미니」아가씨들은 「고고·리듬」에 몸을 비비꼬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식당에서 술을 많이 마시는 것 같지 않았고 서울의 「고고·클럽」과 같은 광란의 분위기도 없었다. 우리가 본 식당의 종업원은 모두 남자일색. 깨끗한 「샤쓰」위에 「넥타이」를 단정히 매고 손님들에게 정중한 「서비스」를 베풀었다.
소련 「민스크」에도 밤의 요화는 있었다.
창녀 굴이나 거리의 유객 행위는 없다지만 외국관광객을 상대로 「호텔」에 은밀히 잠입하는 여인들을 근절하지는 못하는 모양. 각국 선수단이 묵고있는 「호텔」에 뻔질나게 드나드는 「콘스탄틴」이란 이름의 청년도 알고 보니 뚜쟁이였다.
소련여행 경험이 있는 한 일본 임원은 『소련서는 구하기 어려우므로』「고무」가 필수 휴대품이라는 얘기까지 들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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