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스크」에 한국을 심고 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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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역만리 소련땅에서 만난 동포들이었지만 우리는 다소간 경계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상대가 공산사회에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빅토르·리」나 안종수씨 같은 사람은 소의 「남과 북」의 역사나 현황을 거의 모르고 있었고 다만 동족에 대한 호기심과 본능적인 호의에 이끌려 접근해올 뿐이었다.
그들은 6·25를 「시민전쟁」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남쪽에서 북침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한편 가끔 「호텔」과 경기장에 나타났던 「에딕·리」란 젊은 친구는 한국말을 알면서도 모르는 체 위장, 그 정체가 아리송했다.
우리 선수단은 출국할 때 몇 가지 선물을 준비했다.
FILA(국제「아마·레슬링」연맹) 「마크」가 새겨진 「넥타이」2백 개, 자개상 10개, 「트랜지스터·라디오」10개, 거북선담배 2백 갑, 자개담배 「케이스」50개, 놋쇠재떨이 50개, 「배지」5백 개, 「페넌트」2백 개, 4홉들이 소주20병, 『한국스포츠』 라는 책 1백 권, 그리고 「볼·펜」껌「스카프」에 「팬티·스타킹」이 50장 등.
별로 대수롭잖게 여기며 가지고 간 이 소박한 선물들은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자개상을 받은 소련 「레슬링」협회장 「카트린」씨 등 임원들은 고귀한 재보를 만지듯 신기해하며 『소중히 간직할 기념물』이라고 기뻐했고 서울의 모습과 한국「스포츠」의 이모저모가 담긴 『스포츠·인·코리아』를 펼쳐볼 땐 대단한 호기심을 나타냈다.
「모스크바」안내원 「다냐」양이나 「호텔」청소부인 40대 아줌마. 또 경기장의 미인아가씨들도 「스카프」 와 「팬티·스타킹」의 선물에 고마와 어쩔 줄 몰랐다.
참으로 이 선물들은 곧 우리가 「민스크」에 심어놓은 「까레아」(한국) 의 일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우리는 이 선물들로 인해 소련시민들의 순박한 인간미를 엿볼 수 있었다.
우리가 9일 종합기술학원체육관에서 연습 후 「사우나」를 할 때 소련선수단「트레이너」인 「알렉산도로노프」는 스스로 우리 선수들에게 그 힘든「마사지」를 해주었다.
나는 그의 친절에 너무나 고마워서 「트탠지스터·라디오」를 선사했다. 그러자 이 동양적 인정이 넘쳐 흐르는 「슬라브」인은 차고였던 소제 손목시계를 선뜻 풀어 나에게 주는 게 아닌가.
그는 그 이튿날에도 『어제 받은 선물이 너무 감사하다』면서 1백여 「달러」짜리 「카메라」1대를 가지고 와서 재차 답례, 나는 오히려 어리둥절해질 지경이었다.
그의 이런 마음씨는 「팁」을 사양하는 「호텔」청소부나 『기념이 되길 바란다』 면서 선선히 사진촬영에 응해주는 경기장 미녀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한편으론 우리는 외국인의 한갓 가벼운 생활용품에 우스울 이만큼 열띤 반응을 보이는 그들의 태도에서 물품이 풍요치 못한 소련사회상의 한 단면을 짐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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