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회 대표간사 이기백 교수=학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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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학자에게 가장 바람직한 일이 있다면 논문발표를 통한 학문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역사학회」는 학보나 월례회를 통해 논문발표와 토론의 광장을 제공해 왔습니다. 한국역사학의 발전에 종가 적인 구실을 해 온 셈이지요.』지난 22일 제1회 중앙문화대상(중앙일보-동양방송 제정)학술부문수상 단체로 선정된「역사학회」의 대표간사 이기백 교수(한국사·서강대)는 새삼 보람을 찾은 듯 열의에 차 있었다.
역사학회가 발족된 것은 52년 3월 피난지 부산에서였다.
당시 30세미만의 젊은 역사학도 20여명은『학자가 민족을 위하는 길은 학문적 진리를 탐구하는데 있다』는 사명감에서 국사·동양사·서양사가 함께 참여하는 학회를 만들었다. 이것이 오늘날의 역사학회가 된 것이다.
현재 회원 수는 등록된 회원 수만 7백20여명으로 대부분 대학에 종사하는 현역학자들. 계간으로 발행되는 학회지『역사학보』는 67집까지, 정기 월례발표회는 1백80회를 기록하고 있어 해방 후 설립된 학회 중 가장 활동이 활발한 학회로 손꼽히고 있다.
그 동안 역사학회가 이룬 주요업적에 대해 이 교수는『한국사의 시대구분문제, 근대화와 주체성문제, 첨성대논쟁』등 많은 것이 있지만『다섯 차례에 걸친 국내 역사학의「회고와 전망」사 논집「한국사의 반성」「실학연구입문서」발간 등 이 특기할 만하다』고 말한다. 전국역사학대회를 처음 시작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과라고 밝혔다.
역사학보는 처음에는 고증을 중심으로 한 논문이 많이 실렸으나 그후 사회경제사, 사상사 등의 논문이 주류를 이뤘고 최근에는 신진학자들의 논문소개가 두드러진 경향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업적에 반해 역사학회가 지니고 있는 문제도 많다. 이교수가 가장 심각하게 지적하는 것은 동·서양사 논문의 절대 수 부족으로 국사와 균형 있는 발전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국학진흥「붐」을 타고 국사에 관심을 둔 학생과 연구소는 늘어났지만 동·서양사의 연구자수는 오히려 감소추세에 있어 더욱 불균형을 심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재정적인 문제. 이번의 상금(5백만원)으로 크게 보탬이 됐으나 현재 모금중인 1천만원의 기금이 확보되면 민족사의 정통성을 추구하는「분단사학의 극복」에 주력하겠다고 계획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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