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건재…최근의 소련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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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 반세기 동안 종교가 금지되었던 소련에서 신자가 사라져 가리라는 정부 당국자들의 예상과는 달리 아직도 상당수의 신자가 건재하고 있으며 특히 젊은층 사이에 종교적 관심이 높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서방의 소련관계 전문가들에 의하면 현재 소련 국내에는 3천만에 이르는「러시아」정교인과 백만의 침례교인, 5만의「로만·카톨릭」, 그밖에도「모슬렘」유대교인들이 종교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
공산주의의 창시자「카를·마르크스」는 종교를 인민을 홀리는 아편으로 규정했다. 「소비에트」연방의 창건자「레닌」은 자본주의의 노예들을 병들게 한 독주라고 종교를 매도했다.
1917년「레닌」이 정권을 잡은 후「러시아」의 종교는 역사이래 처음으로 정치와 분리됐다. 교회건물은 대부분 정부에 접수되거나 영원히 폐쇄되었다.
「스탈린」이 집권한 1930년대에 들어서「러시아」의 종교는 가장 혹독한 시련에 직면했다. 모든 믿음의 표현은 금지되고 교직자는 구금됐으며 남은 교회들이 폐쇄되고 신자들은「시베리아」로 유배 보내졌다. 그러나「스탈린」은 2차 대전 등 안에「러시아」정교를 후원, 민족적 애국심을 호소하기도 했다.
「흐르시초프」가 정권을 계승한 다음에도 종교탄압은 계속됐다. 1만여 곳의 교회가 더 폐쇄되고 모든 종교활동엔 가혹한 제재가 가해졌다.
「브레즈네프」가 들어선 이래 현재까지는 눈에 띄는 종교박해는 훨씬 줄어든 셈이다. 다만「우크라이나」와「발틱」해 연안지방에서 종교활동이 반정부적 성격을 띠게 되자 그들을 제재한 정도였다.
「브레즈네프」의 정책은 종교가 공산당이나 소련의 국가체제를 위협하지 않는 한은 종교에 관대한 편이다. 그러나 서방의 관측자들은 소련정부와 종교는 양립되지 않을 것이며 실제로 양편의 긴장이 높아가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한편 더욱 주목할만한 사실은 소련의 젊은 세대가 종교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 그 단적인 예로 젊은 공산당원 가운데 교회의 결혼·장례식·세례 등의 의식에 참가했다가 당에서 제명된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종교적 관심이라기보다도 단순한 호기심이나 민속적인 것에 대한 향수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소련사회에서 자신들의 매우 중요한 부분에 부족을 느끼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것은 무언가에 대한 믿음인 것이다』라고 한 소련관계 사회학자는 설명하고 있다. <미「월드·리포트」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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