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수」의 배후는 암달러상과 폭력배|「보따리수출」이라는 이름의 밀수의 검은 조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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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여수=전육기자】활선어 수출을 빙자한 여수의 밀수는 수배 중인 허봉용씨(46)를 비롯한 4∼5개의 폭력조직과 영세선원들의 돈줄 역할을 해온 암「달러」상들에 의해 좌우되었다.
따라서 지금까지 여수밀수의 첨병역할을 해온 3천여 외항선원들은 이들의 위세에 눌려 밀수의 함정을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3년 석유파동이후 활선어 수출이 적자에 허덕이면서부터 여수의 70여 척 개인소유 소형선박들은 거의 대부분 밀수선으로 탈바꿈했다.
대일 활선어 수출업자의 대부분이 소위 「보따리수출」이라는 이름의 밀수에 손을 댄 것이다. 월1만∼2만원의 낮은 임금이거나 아예 무보수로 일하는 쪽이 많은 외항선원들이 앞을 다투어 배를 타려는 것이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현재 여수에는 점조직으로 연결된 30여명의 암「달러」상이 있다. 여수남산동 아줌마 류모씨 등 거물급 암「달러」상들은 각기 서울에 외화공급처를 갖고 한달에 5천만원대의 「엔」화와 「달러」화를 거래한다.
이들은 각자 3∼4명의 중간상인들을 거느리고 있는데 중간상인들 가운데는 교사, 밀수단속관계의 공무원부인도 끼여 있다는 것. 중간상들은 외화를 직접 받기도 하지만 보다 높은 고리채로 영세선주나 선원에게 밀수자금으로 대준 후 원리금을 되돌려 받고 이익금까지 배당받고 있어 사실상 밀수의 제2선 구실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자기자본이 없고 취업기회가 넓지 않은 하급 외항선원들은 밀수폭력배, 수출업자, 암「달러」상등에 얽매어 좀체로 손을 씻기가 힘든 실정. 또 밀수폭력배들은 이들이 관계당국에 적발되었을 경우 빼주는 「브로커」노릇도 하고 있어 그 조직을 떠날 경우 보복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갖고 있다. 수출업자들은 먼저 20만원에서 25만원씩의 임대료를 주고 수출선을 빌어 선원들을 공모한 다음 선원들로부터 밀수자금을 거두어 들이거나 선원들이 돈이 없을 경우 암「달러」상들로부터 선원들의 각출금 조로 사채를 빌어쓴 후 월1할5푼 내지 4할까지의 고리로 품어내기도 한다는 것.
분배금을 납부한 선원이 1백만원 어치의 밀수품을 들여다 2백만원에 처분했을 때 그는 우선 원금 1백만원에 대한 이자 20만원과 운반비 30만원 등 1백50만원을 제하고 나머지 50만원을 양분, 25만원밖에 차지하지 못하나 이마저 사건 수습비 등의 명목으로 뜯기는 게 많아 실수입은 별것이 없다. 이 때문에 한번 걸리면 몇 십만원의 수습비를 내야하고 이를 갚기 위해서는 다시 밀수조직에 가담해야만 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형편. 금년 8월말 현재 여수세관에 적발된 1백9건의 밀수 가운데 90% 이상이 이 같은 보따리 밀수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게다가 이를 선원들은 일본에서 적발되어 국제적인 망신을 당하는 경우도 많다. 지난6월21일 삼치 5천kg을 「시모노세끼」에 수출하고 금괴를 밀수해오던 제 2 우창호(50t)가 일본세관에 적발되어 선원 2명이 억류되기도 했으며 또 5월26일에 동진호(40t·선장 신창우)가 잇달아 일본세관에 붙들려 2개월 후에 수출선임을 앞세워 통사정 끝에 풀려났었다.
외항선의 이 같은 실정을 잘 알고 있는 여수시민이나 수사기관은 이들을 괴롭히는 조직이 뿌리뽑히지 않고는 밀수 근절은 힘들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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