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정에 안긴 「30년」…설렌 첫 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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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고국땅은 어머니의 품속과 같군요. 흥분과 설레임으로 하룻밤을 꼬박 밝혔습니다.』 15일 하오 해방30년 만에 처음으로 고국을 방문, 서울 세종 「호텔」에서 모국의 첫 밤을 지낸 조총련계 재일동포 4백70여명은 한결같이 16일 아침까지도 흥분과 감격으로 상기된 얼굴들이었다.
재일거류 민단의 주선으로 추석성묘를 위해 이번 모국을 방문하는 조총련계 재일동포는 모두 7백 여명. 15일 하루에만 4백70여명이 김포공항으로 입국했고 14일에 20명, 13일 관부「페리」편으로 5명이 왔으며 16일에도 약 2백명이 입국한다. 45년 전 가족들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갔던 최경숙씨(47 광도현강파동1정목4의16)는 30년 만에 그리던 언니 최순덕씨(53 서울관악구흑석동)를 만나 소감을 한마디로 『꿈만 같다』고 했다. 김포공항에서부터 부동켜안고 떨어질 줄 몰랐던 이들 자매는 최씨의 숙소인 세종 「호텔」806호실에 도착해서도 밀리고 밀렸던 이야기들로 함께 밤을 꼬박 새웠다.
28년 만에 고국 땅을 밟은 김성수씨(62·본명 동교연 광도현 풍전 안포정 삼포구 338)도 형 차교수씨(65 경남합천군효덕면성대리)와 함께 세종 「호텔」에서 고국의 첫 밤을 보냈다. 조총련 안포지부 위원장으로 있는 김씨는 모국 방문길에 오를 때 조총련간부들로부터『나라를 팔아먹는 짓을 하지 말라. 한번 가면 살아서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는 등 갖은 회유와 협박을 받았으나 『네 조국, 내 강토를 죽기전에 봐야겠다』면서 비행기 「트랩」에 올랐다고 했다.
꿈에서도 잊을 수 없던 형을 얼싸안고 긴 밤을 지새며 조국의 참모습을 들은 김씨는 『허황된 꿈과 시행착오로 젊은 청춘을 헛되이 보낸 것 같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31년 만에 홀로 고국에 온 정규석씨(56 신호지부 송산「아파트」)는 경주부근에 살고있다는 형 목수씨(67)와 조카들을 만나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다.
일본에서 부인 조모씨(53)와 4년 만에 별거, 토목일을 하며 혼자 외롭게 살아온 정씨는 『말로만 듣던 서울의 참모습을 보고 가슴이 설레인다』며 활짝 웃었다. 34년 만에 어머니 김돌금씨(79 경남거창군남상면춘전리·37)를 만난 정일순씨(59·여·일본동경도팔본송정미만140의5)는 백발이 성성한 김씨를 보고는 울음을 터뜨렸다. 서로 얼굴 조차 몰라보게 달라진 동생 등 16명의 가족친척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 이뤄진 모녀상봉은 감격과 기쁨의 도가니였다. 정씨가 일본에 간 것은 25세때. 고향인 거창서 농사를 짓던 남편 심봉석씨(59)를 따라 부산서 무작정 연락선을 탄 것이 조국과 가족들로부터의 먼 이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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