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위 간판으로 복면한 밀수왕|두 얼굴 가진 유지들…그 비행과 범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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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여수=전육기자】「정화위원회와 밀수범죄조직」 -가장 상반되는 개념으로 보이는 단어가 여수지방에서는 가장 밀접한 관계로 드러나고 있다.
삼남 해안지방을 무대로 한 밀수조직의 황제격인 허봉용씨(46·수산업)가 전직회장으로 수배를 받고 있으며 현 회장인 김점태씨(49·활선어수출업) 역시 같은 처지. 현 22명의 위원 중 9명이 구속되거나 검찰의 수사대상이 되고있어 정화위원회는 마치 양의 가면을 쓴 이리들의 농간에 늘아난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결국 선량한 나머지 정화위원까지 누명을 쓴 셈이다. 시비의 대상이 된「여수시 정화위원회」는 지난 70년 10월15일 밀수와 폭력의 도시라는 오명을 씻는다는 구호아래 당시 시장과 경찰서장이 앞장서 지방유지들로 조직한 민간인 친목단체. 당초는「사회복지를 돕고 지역사회의 개발과 기능을 위해 봉사」한다는「캐치·프레이즈」를 앞세우고 마을 앞 청소, 양로회 위문, 운동회 주선 등 친목과 사회봉사 활동을 벌였으나 오래지않아 그 성격이 차차 변질됐다는 것이다.
조직 당초 폭력사건을 근절한다는 이유로 회원 중에 허봉용씨 등 밀수폭력배를 선임했기 때문이라는 것. 「지역사회에의 봉사」는 커녕 크고 작은 공사입찰에 직접·간접으로 개입하는가하면 선량한 사업가를 협박하기도 했다.
한때 조용하던 시내는 시끄러워지기 시작했고 싸움이 벌어졌다하면 회원 중 몇몇의 이름이 오르내렸고, 대규모 노름만을 주선한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여수시의 영향력 있는 기관의 주선으로 마련된 기관의 이름을 업고, 또 정화위원회 위원장이라는 간판을 앞세워 허봉용씨가 밀수조직에 다시 손을 댄 것은 지난 71년말께인 것으로 알려졌다.
허씨는 겉으로는 수산업자 또는 부동산업을 하는 것처럼 지방유지 행세를 하면서 뒷전에서 밀수조직을 운영, 지휘해왔다.
그는 지난 20여 년간 지역사회에서 길러온 조직과 자신의 금력·행정기관 등의 배경을 마구 휘두르기 시작, 무관의 황제로 군림해왔다는 것이다. 검찰수사로 밝혀진 그의 수법을 보면 직접 하부조직을 시켜 밀수를 하는 것 이외에 밀수업자를 상대로 1할5푼 내지 3할의 고리채 놀이를 하는 것이 대종-.
치밀한 정보망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다른 밀수조직이 그의 허가없이 밀수를 하면 보복을 받는다해서 일부러 비싼 고리채를 빌어다 밀수를 하기도 한다고 허씨는 자기조직 뿐 아니라 다른 조직 특히 자신의 돈을 빌어간 사람들이 검거되는 경우 그 뒤처리까지 맡아 해주고 사건의 크기에 따라 수습비조로 20만 내지 1백만원씩 받아왔다는 소문이다.
지난 8월5일 여수세관원 서정휴씨를 살해한 강찬환씨(구속)의 아들 강석범씨(구속)의 경우 당시 밀수를 하고도 자신에게 신고를 하지 않았다 하여 부하 5명을 시켜 강씨를 해안으로 납치, 전치 3주의 뭇매를 때렸다는 것이다.
그 당시 강씨가 진단서를 떼어 경찰에 고소장을 대자 허씨는 강찬환씨를 찾아가 5만원을주며 고소취하를 종용, 끝내는 취하장을 받아내 사건을 무마했다는 것이다.
검찰정보에 따르면 이밖에 허씨는 지난 6월18일 밤 부두목격인 운반책 정상형씨(32·수배중)를 불러 평소 그의 말을 잘 듣지 않는 밀수업자 조모씨(28)를 찔러 죽이라고 명령했으나 이를 눈치챈 조씨가 허씨에게 용서를 빌고 무마하기도 했다는 소문도 있다.
이번 사건의 수사로 밝혀진 수정동소재 허봉용씨의 주택은 이 지역 사회에서 그의 위치를 설명하는 자료로 평가된다.
수창동 신포 제1부두에 자리잡은 연건평 2백50평의 2층 「슬라브」건물은 68년2월9일 당시 교통부 소유 국유지로 허씨는 이를 『해운「센터」로 사용하겠다』는 구실로 현지 기관에 압력을 넣은 뒤 건축허가를 받았다는 것. 그는 건물이 완공되자 아래층은 한려개발주식회사 등 3개회사에 세를 주고 2층 일부를 자신의 저택으로 사용하고 있다. 조사결과 아직도 국유지로 불하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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