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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1437)전국학연(제47화>-나의 학생운동 이철승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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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비상 궐기대회>
1946년 3월13일. 북녘 땅 함흥으로부터 총격적인 비보가 날아들었다.
함흥학생들이 궐기해서 반소시위를 벌이다가 소련군과 공산당 앞잡이들로부터 무차별 충격을 받았다는 「뉴스」였다.
해방군이 아닌 난폭한 점령군의 만행은 곧 45년 11월23일, 신의주 학생의거에 이어 또 한번 「피의 항쟁」을 불러 일으키고 말았다.
그 결과 사망자 3명. 부상자 80여명. 그리고 무수한 어린 학생들이 「시베리아」로 유형되어 가고 말았다. 이 사건은 46년3월1일. 평양역 광장에서 가짜 김일성 배척의 「비라」를 뿌리고 수류탄투척으로 김일성의 폭살을 기도했던 김현철 김련신 이희영 박성극 함명수 (이상 평양사) 정확실(서문여고)등 반공학생과 이성열 김정집 이교두 최기성 등 반공청년들의 의거와 함께 큰 충격을 불러일으켰다.「반탁학연」은 이들 양대 사건으로 검거선풍에 몰려 계속 월남하는 서북학생들을 위한 후원회를 조직하는 한편 전국학생비상궐기대회를 개최하였다.
3월30일, 「파고다」 공원에서 대회는 열렸다.
이날 대회는 중등연맹이 결성된 후 처음 열리는 옥외행사로 중등부학생들의 활약이 컸다.
제복차림의 남녀중학생들이 식장을 꽉 메웠다.
우렁찬 성남중학의 「브라스·밴드」가 행진곡을 연주해 장내분위기를 덥게 했다.
성남중학에서는 8백여 학생이 단체로 몰려왔다.
오후 l시. 「반탁승리」의 「플래카드」가 나부끼는 가운데 전국학생 비상궐기대회가 시작됐다.
장순덕(연당·조폐공사이사)동지의 사회로 진행된 대회는 나의 개회사에 이어 안경득(연당·목사) 동지가 대회사를 했다. 함남출신으로 월남 후 함남학생회를 조직한 안동지는 월남학생들의 원호사업에 힘쓰는 한편 반탁학연의 간부로서 이날 북한공산당의 잔악상을 폭로, 장내를 숙연케 했다.
뒤이어 백남당선생(당시 민주의원)의 격려사가 막 시작될 찰나였다. 난데없이 『집어 치워라! 학도들의 모임에 왜 민주의원이 나오느냐?』는 고함이 터졌다.
좌익학생과 「학통」대원들이었다.
이들 좌익패거리들은 구석구석에 박혀 있다가 일제히 단상을 향해 소란을 피웠다.
순식간에 대회장은 수라장이 됐다.
「마이크」를 잡은 장당덕동지가 결서를 잡기 위해 위협을 무릅쓰고 안간힘을 썻다.
전병두 이한정 박갑득 장당삼 김동흥 등 일당백의 맹장들이 좌익 두 세명 씩을 메어던지고 박치기 등으로 고꾸라뜨렸다. 급히 미군MP가 달려왔다. 그러나 도망가는 좌익학생은 놓아두고 우리더러 해산하라고 야단이었다.
『고·홈!』『고·홈!】하고 외쳐냈으나 우리는 막무가내였다.
당시 미군정은 우리가 좌익의「비라」를 뜯기만 해도 「기물손괴」로 입건을 정도여서 언필칭 엄정중립이었지만 우리들은 감정이 좋지 않았다.
이런 수라장 속에서 황근옥양(이당·고아원경영)은 등단, 결의문을 읽었다.
『백만학도는 한 손에 총을 들고 한 손에 붓을 들어 일사로 독립을 전취하자!』「파고다」공원은 반탁·반공의 함성이 메아리졌다.
대회가 끝난 후 나는 학연간부 전원과 윤원구 최대현등 학연 이론파와 함께 경교장으로 김구선생을 찾아갔다.
큰일을 치르고 나면 전국반탁개위를 찾아가 보고 하는 것이 상례였다.
보고를 들은 김구선생은 덥석 우리들의 손을 잡으며 격려해주었다. 『중요한 건 곧 정신이야! 우리는 미국사람처럼 원자탄은 없지만 마음에 뜻을 새기면 바로 그게 원자탄이야!』『마음의 원자탄!』 김구주석의 이 말씀은 지친 우리들에게 큰 용기를 주었다.
그의 저택인 경교장은 당시 광산왕 최창학씨가 그의 사저인 죽첨장을 임정 환국시에 기증한 것. 지하1층·지상2층에 전용 이발관까지 갖춘 당시 제1급의 가옥.
그러나 그의 생활은 너무도 소박하고 검소했다.
당시 경교장을 출입한 사람이면 다 아는 사실이지만 밥 한그릇, 국 한그릇, 야채 한 접시 이것이 백범 김구 주석이 드시는 식사 「메뉴」의 전부다. 옆에서 보는 사람이 민망하여 『선생님 고기도 드십시오』라고 권하면『이 사람, 내가 먹지 않으면 내 몫은 남이 먹을게 아닌가』하시면서 껄껄 웃으셨다. 『사람은 분수를 알아야 해! 나는 일채일탕이면 그만이야!』 이것이 그날 밤 백범선생이 우리에게 준 또 하나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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