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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입양아·동성애자·이주노동자 … 세상의 가장자리로 밀려난 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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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목요일에 만나요
조해진 지음, 문학동네
272쪽, 1만2000원

반가웠다. 표지에 찍힌 이름만으로 책장을 선뜻 펼칠 만큼. 저자는 지난해 황순원문학상 본심에 오른 단편 ‘빛의 호위’의 작가. 섬세하면서도 단단한 문장에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이야기를 액자소설 형식을 빌어 짜임새 있게 풀어낸 ‘빛의 호위’는 ‘조해진표 단편소설’의 매력을 한껏 발산했다. ‘빛의 호위’는 빠졌지만 9편의 단편을 묶은 이번 소설집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그의 시선은 늘 세상에서 한 발짝 물러선 채 맴도는, 중심부에서 벗어나 소외된 듯한 사람에 머문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신장 질환을 앓는 아이의 수술을 위해 입양됐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의 친엄마를 찾으러 한국에 온 주인공(‘PASSWORD’)이나 엄마의 죽음이 자신의 실수라고 생각하고 떠나버린 남동생을 기다리는 누나(‘목요일에 만나요’)를 비롯, 동성애자와 이주노동자에까지 렌즈를 들이댄다. 누구도 귀기울이지 않던 이들의 목소리를 흘려 보내지 않았다.

 사람들과 세상의 모든 사물이 유리로만 이뤄진 도시를 상정한 단편 ‘유리’ 속 인물들은 쉽게 상처받고 부서지는 사람들에 대한 은유다. 가벼운 신체 접촉이 죽음에 이르는 치명적인 충격이 될 수 있어서다. ‘단 한 번의 인간적인 교류로도 불필요한 충돌이 생길 수 있었고 불필요한 충돌은 때때로 되돌릴 수 없는 파멸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걸 그들은 모두 알고 있었던 것이다’라는 구절처럼 세상은 약자에게 지나치게 폭력적이다. 그렇기에 상처받은 이들은 움츠러들고 숨어들 수밖에 없다.

 마음에 고인 말도 하지 못한 채 속으로 울음을 삼키는 이들을 보며 작가는 섣부른 연민이나 동정을 베풀지 않는다. 그저 깊은 눈으로 부담스럽지 않은 거리를 유지하며 이렇게 말할 뿐이다.

 “죽어서도 영혼을 갖지 못하게 된 가엾은 거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가 아무도 들어줄 수 없는 구차한 혼잣말 같다고 느껴질 때면 간혹 이렇게 울었다. 산은 흔들리고 강과 바다는 난폭해지며, 꽃과 나무는 바람에 휘날리고 땅은 차가워진다. 거인들이 울 땐, 그저 가만히 서서 그들의 슬픔이 잦아들 때까지 기다려주어야 한다. 이것이, 이보나가 내게 가르쳐준 세상에 대한 예의였다.”(‘이보나와 춤을 추었다’ 중)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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