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속으로] 가정법원서 들여다본 이혼 풍속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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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선 매년 11만여 쌍의 부부가 이혼한다. 요즘 이혼 부부들은 과거와 달리 이혼 사실을 당당히 밝힌다. 이혼 후 오히려 더 잘 사는 ‘돌싱’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피할 수 없다면 해피엔딩으로 이혼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13년 동안 1500쌍의 이혼을 지켜본 서울가정법원 송현종 가사조사관으로부터 ‘해피하게’ 이혼하는 기술에 대해 들어봤다.

“아빠, 엄마가 예전처럼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지난달 21일 서울 양재동 가정법원. 아기에게 젖병을 물리며 스크린의 영상물을 보던 젊은 아내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혼 소송 중인 한 부부의 아이가 부모에게 편지를 쓴 대목이었다. 그녀는 안고 있는 아기를 한동안 애처롭게 쳐다봤다. 한 시간여 동안 진행된 이날 교육에서 네 쌍의 부부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한 50대 부부는 함께 들어왔지만 좌석 양쪽 끝에 멀리 떨어져 앉았다. “같이 할 게 많으니 붙어 앉으라”는 말에 그제야 남편이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두 사람 마음의 거리는 여전히 멀어 보였다.

 한겨울 칼바람보다 더 차가운 기운이 감도는 이곳은 협의이혼 교육장이다. 법정이혼이 아닌 협의이혼을 하려면 반드시 이곳에서 교육을 받아야 한다. 2012년 한 해 이혼 부부는 모두 11만4781쌍. 이 가운데 협의이혼은 9만2331쌍, 법정이혼은 2만2450여 쌍이었다. 같은 해 결혼한 커플이 32만여 쌍이었다. 2001년부터 가정법원 전문조사관으로 일하면서 1500여 쌍의 이혼을 지켜본 서울가정법원 최장수 조사관인 송현종(44) 조사관에게 요즘 이혼풍속도와 이혼을 잘 마무리하는 방법에 대해 물었다. 송 조사관은 “수학 문제 풀 듯 이성적으로 이혼에 임하는 것이 해피엔딩을 만드는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이혼 자체보다 양육권 싸움이 더 격렬

 얼마 전 송 조사관을 찾은 한 30대 부부. 5년간 같이 살다 별거에 돌입했고 2년 만에 갈라서기로 합의했다. 남편 A씨는 어린 딸이 자꾸 눈에 밟혔다. 양육권에서는 아빠보다 엄마가 더 유리하다는 변호사의 조언이 A씨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는 딸을 데리고 있는 아내에게 “한 번만 보고 싶다”고 부탁했다. 하지만 딸을 데리고 간 A씨는 딸을 돌려보내지 않았다. 가정환경을 조사하러 간 송 조사관에게 A씨는 “아내는 엄마 자격이 없다”며 “딸도 ‘엄마가 보고 싶다’는 말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집 구석을 자세히 살펴본 송 조사관 눈에 기저귀가 보였다. 대소변을 잘 가리던 아이가 갑자기 바지에 실수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가 겉으로 내색하진 않았지만 스트레스가 쌓이면서 배변 퇴행이 나타난 것”이라는 송 조사관의 말에 A씨는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는 “아내가 밉더라도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라”고 조언했다. 아이 양육을 둘러싼 갈등은 아직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때부터 A씨는 조금씩 자기 주장의 수위를 낮추고 일부 조건을 양보하고 있다. 송 조사관의 충고가 효과가 있었던 셈이다.

 이혼 소송에서 양육권을 둘러싼 다툼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에는 아이를 한 명만 갖는 부부가 늘어나면서 갈등의 정도가 훨씬 심해졌다. 송 조사관은 “옛날엔 당장 눈앞의 이혼 소송이 큰 문제였다면 지금은 양육권을 두고 더 격렬하게 싸운다”며 “양육권을 빼앗긴 경우에는 면접교섭권만이라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하게 다툰다”고 말했다. 이를 지혜롭게 해결하기 위해선 쿨해질 것을 강조했다. 그는 “상대방이 아무리 밉더라도 쿨하게 털어내야 한다”며 “쉽지 않지만 이성적으로 받아들여야만 자녀들을 고려하는 등 시야가 넓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송현종

오해 많은 다문화부부의 이혼

 지난 10년간 국제결혼이 증가하면서 이들의 이혼 건수도 급증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5년 4151건이던 다문화 부부 이혼건수는 2012년 1만887건으로 세 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2011년께 송 조사관이 만난 부부도 그중 하나다. 서울 지역에서 막노동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던 B씨(37)는 결혼중개업체 소개로 2010년 중국의 한족 여성(23)과 결혼했다. 사진 속 신부는 어리고 예뻤다. 한 번도 실제로 만나본 적이 없었지만 업체에 1000만원을 입금했다. 중국에 직접 들어가 처음 본 신부를 데리고 들어왔다.

 결혼 후에는 본전 생각이 강해졌다. 돈 들여 결혼했으니 아내로부터 극진한 대우를 받고 싶었다. 무엇보다 원활한 성관계에 대한 욕구가 컸다. 아내가 사회생활도 하지 않고 자신을 위해 집에만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아내는 그런 요구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자기를 무시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말이 잘 통하지 않은 탓에 갈등은 더 커졌다. 외부 활동을 못하게 된 아내는 채팅에 빠졌다. 하루가 멀다 하고 부부싸움이 이어졌다. B씨는 심심찮게 폭력을 휘둘렀다. 아내는 결혼 반 년 만에 이혼을 결심했다. 조사를 받으러 나온 B씨는 송 조사관에게 “나에게 남편 대접을 제대로 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반면에 아내는 “나를 성노예 취급을 하고 때렸다”고 반박했다. 결국 위자료 200만원을 주고 이혼하는 데 합의했지만 두 사람 다 큰 상처를 입었다. 남편의 집을 떠난 아내는 한 해 먼저 한국에 와 있던 동생 집 근처에 머물며 식당에서 일하고 있다.

 다문화 가정 이혼 소송에는 일반 사건과 반대되는 또 다른 특성이 있다. 양육권을 미루는 탓에 한국인 간 이혼에 비해 아이들이 고아원 등 보육시설로 직행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송 조사관은 “지난해 서울가정법원에서 550여 건의 혼인무효소송이 있었는데 이 중 80% 정도가 다문화 부부의 사례였다”며 “서로 잘 모르는 상태에서 결혼하다 보니 이혼도 손쉽게 하고, 특히 남편 쪽에서 아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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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에게 휘둘리는 꼭두각시 부부들

 자립하지 못하고 부모에게 의지하는 이른바 ‘캥거루족’들의 이혼 사례도 요즘 많이 나오고 있다. 이들에게는 결혼은 당사자 간 문제라는 당연한 원칙마저 흔들리는 경우가 많다. 송 조사관은 “부모의 꼭두각시처럼 조종당하듯 이뤄지는 이혼이 많다”고 전했다.

 지난해 만난 한 부부는 결혼 1년 만에 서울가정법원을 찾았다. 변호사였던 남편 C씨(35)는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아내(29)를 만났다. 사귄 지 6개월 만에 부모의 허락이 떨어져 결혼했다. 하지만 신혼 때부터 생활비 문제로 자주 다퉜다. 변호사 시장의 불황으로 남편의 수입이 생각보다 적었기 때문이다. 사소한 다툼에 시부모가 개입하면서 갈등이 커졌다. 시어머니는 걸핏하면 “우리 아들이 돈 좀 못 벌어온다고 그렇게 무시하면 되느냐. 혼수도 제대로 안 해왔으면서…”라며 속을 긁었다. 혼수 얘기에 스트레스를 받던 아내가 친정에 이 사실을 얘기하면서 다툼은 집안싸움으로 번졌다. 결국 아내는 이혼을 결정했다.

 송 조사관은 이혼이 집안싸움으로 번지는 것을 가장 경계해야 된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런 부부들은 조정할 때도 부모를 데리고 온다”며 “‘이런 식으로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유해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혼이 집안싸움으로 되는 순간 온 가족이 진흙탕에 빠지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며 “이혼 후에도 한 아이의 부모로서 계속 만날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 된다”고 말했다.

집 안에 틀어박힌 노인들의 황혼 이혼

 최근 몇 년간 꾸준히 늘고 있는 황혼 이혼 부부도 송 조사관의 주요 고객이다. 60대 초반인 E씨는 30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하다 2년 전 명예퇴직했다. 지방 지사에서 주로 일해 오랜 기간 주말부부로 지냈다. 퇴직 후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갈등이 생겼다. E씨는 대학생이던 두 자녀에게 사사건건 명령식으로 간섭했다. 모든 집안일을 일일이 지시하기 시작했다. 자녀들은 반발했고 E씨는 ‘직장에서 쫓겨난 아버지를 가족들마저 무시한다’고 생각했다.

 하루는 술을 먹고 들어와 신세 한탄을 하다 술김에 손찌검을 했다. 이를 견디지 못한 아내는 이혼을 결심했다. 아내는 송 조사관에게 “아이들 결혼할 때까지만 참자는 마음으로 평생을 버텼다”며 “이제는 못 참겠으니 조정이고 뭐고 다 필요 없고 빨리 판결을 내달라”고 말했다. E씨는 “평생 가족을 위해 일했는데 직장에서 나온 뒤 배신당했다”며 억울해했다. 송 조사관은 “황혼이혼 부부의 경우 소송을 건 쪽에서 조정 자체를 싫어하는 경향이 심하다”며 “갈등이 오랜 기간 잠복해 있는 경우가 많아 원만하게 처리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노진호 기자

송현종은

2001년 7월 전문조사관제도가 생긴 때부터 서울가정법원에서 전문조사관으로 일하고 있다. 서울시립 청소년복지센터 등 지역사회 상담사 실무를 거쳤고 숭실대에서 사회복지학 박사를 받았다. 서울가정법원에서 가사·소년·가정보호 사건조사·상담업무와 함께 각종 제도위원회에 전문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현재는 ‘새로운 가사사건 관리모델 개발위원회’에 전문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사법과 복지가 연계될 수 있도록 하는 ‘사법복지’ 분야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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