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홀하기 쉬운 「언어환경」경어 없어진 빗나간 대화법-이희승 박사<국어학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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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언어나 문자는 모든 문화발전의 원천이 될뿐만 아니라 민족정신과 국민의식을 고취시키는 원동력인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인간 생활에 미치는 언어환경의 중요성을 의식하면서 요사이 우리 「국어의 현실」을 돌아보면 그 잡박하고 혼란스런 상태야말로 참으로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독일의 한 국어학자는 『국어교육의 목적은 생활능력을 부여해주고 인격과 민족정신의 도야재가 되는 훌륭한 언어 환경을 만들어 주는데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중요한 언어환경의 문제를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크게 의식치 못하는 것은 마치 공기의 중요성을 인식치 못하면서 살아가는 것과 같다.
다른 모든 환경의 오염이나 공해문제는 심각히 논란되면서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을 정도로 오염 돼버린 우리의 언어 환경에 대해 큰 우려를 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시급한 언어환경의 정화책을 가볍게 생각해 버리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잠시 우리의 언어 현실을 돌아보면 무례하고 각박한 일상 언어나 하나의 사회풍조가 돼버린 외국어의 남용, 혼란 속에 빠져있는 외래어의 포기 등 우리 언어환경의 오염도는 이미 그 위험 수위를 넘어선 것 같다.
가정 생활에서의 부부대화만 봐도 이제 남편의 『해라』 와 아내의 『반말』이 하나의 풍조가 됐고 자녀들의 어머니에 대한 『반말』이 일반화됐다.
일본의 영향을 받은 듯한 이 같은 부부간의 대화법은 원래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로 부부상경의 대화가 원칙이었던 것이다.
하류 천민사회에서도 『하오』나『하게』의 부부대화는 있었지만 반말이나 『해라』는 있을 수 없었던 일이다.
나도 집에서 아이들이 어머니한테 반말을 하는 것을 시정해 주려고 몇번 야단도 하고 타일러도 봤지만 『어머니한테 반말 못하면 누구에게 해요』라는 항의(?)만을 받았다.
그러니까 이 같은 대화법은 이미 하나의 사회풍조로 굳어져 쉽게 고치기가 어렵게 된 것 같다.
나같이 나이를 먹은 세대가 윤리도 없고 도덕도 없는 오늘의 잡박한 우리 언어 현실을 보면 탄식을 넘어 분노를 느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외국어의 남용은 정말 구역질을 느낀다. 특히 외래어와 외국어를 구별치 못하는 혼동을 범하는 인상이 짙은데 그 한가지 두드러진 예가 국어화된 외래어를 구태여 원음대로 발음하려는 풍조를 지적할 수 있다.
「나이타」「라디오」「세멘트」등과 같이 이미 우리말 화한 외래어들을 굳이 원음대로 「라이터」「레이디오」「시멘트」로 발음해야 유식한 것 같이 인식들을 한다.
한자어에서 온 외래어인 「학교」는 중국어 발음인 「쉐이·자오」나 일본 발음인 「각고」와는 전혀 달리 이 지구상에서 우리만이 「학교」라고 발음하지 않는가.
원래 국어화된 외래어는 외국인이 못 알아듣는 법이다.
가령 다방에서 쓰는 「카네이숀」이나 자동차의 「크락숀」과 같이 그 상표나 제조 회사명에서 유래된 우리의 영어 외래어는 「크림」「흔」으로 말해주기 전에는 미국인이나 영국인이 알아듣지 못한다.
하옇든 영어를 대화에 남용하는 풍조는 머리에 노란 물을 들이는 미용법의 유행보다 나을 것이 없는 것이다. 아마도 눈동자를 파랗게 물들일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면 큰 돈벌이가 될지도 모를 판이지만, 버젓한 우리말을 두고도 그처럼 영어를 많이 쓰려는 풍조는 하루속히 없어져야겠다.
우리의 오염된 언어 환경이야말로 주체성과 자주성은 물론 타락·전도된 윤리관과 가치관을 바로잡기 위해서도 관·민 모두가 총 동원돼 시급한 정화운동을 벌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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