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주보다 정도전이 앞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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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최근 국사학계는 인문계 고등학교의 국정 교과서인 『국사』 조선조 중 성리학의 서술 문제를 둘러싸고 「오류」라는 주장과 그렇게 말하는 것은 「편견」이라는 주장이 맞서 있다. 이 문제는 몇번에 걸쳐 논란된 바 있었으나 최근에는 정몽주와 정도전의 역사상 위치 문제, 이이와 이황의 서술 순서 문제에서 「유물 사관적 역사 서술」이라는 문제까지 번져 그 심도를 더해가고 있다.
이 같은 문제들은 먼저 고대의 이상은 교수 (철학·고대 명예 교수)가 『퇴계 학보』 6월 호에 「국사 교과서의 성리학 서술 비판」이라는 논문을 기고함으로써 재연됐다.
이 논문에서 이 교수는 여말선초의 성리 학자로서 사상·의리·실천 행동의 면에서 「동방이학의 조」라 할 수 있는 정몽주를 빠뜨리고 변절신하의 대표 격인 정도전을 성리학의 완성자라고 본 것은 성리학의 기본 성격인 도학 정신을 망각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둘째로 이황과 이이의 서술 순서 문제에 대해 초기 사림파를 이이로 생각하고 후기 사림파를 이황으로 정하여 성리학의 선배인 이황을 이이보다 나중에 서술한 것은 역사를 거꾸로 서술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세째로 유물 사관적 역사 서술 문제는 국사 교과서 중 「토착 지주의 이익 옹호」라는 문구 때문에 나온 것으로 이 교수는 이러한 표현이 계급 투쟁·계급 의식을 강조하는 사회에서나 필요하지 학술사의 서술에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가 있겠느냐 반문한다.
그러나 이러한 이 교수의 주장에 대해 국사 교과서 집필에 참가했던 서울대 김철준 교수 (한국사)는 사회 사상사적 입장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철학사적인 입장에서만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에 생긴 의문이라고 반론한다.
먼저 정몽주와 정도전의 문제에 대해 조선 초기의 성리학자 군에서 정몽주를 빠뜨린 것은 의도적으로 한 것이 아니고 편집 과정에서 누락된 것이기 때문에 수정판에서는 삽입될 것임을 밝혔다.
그러나 양자의 사상사적 지위에 대하여는 정몽주를 흔히 「동방이학의 조」라고 칭하나 실제로 그가 성리학 관계 저서를 남긴 것도 없고 불교를 비판하는 적극적인 자세와 이론을 갖춘 것도 아니었다고 말한다.
이에 비해 『불씨잡변』을 저술하여 성리학의 입장에서 불교 철학을 비판한 정도전은 고려 왕조에 대한 신하로서의 변절과 사상의 선진성 때문에 도학자들로부터 비난을 받았지만 그의 사상사적인 위치는 월등한 것이라고 밝혔다. 의리만을 지키고 사회 사상가로서는 별다른 업적이 없는 정몽주보다 이조의 개국 공신으로서 역사 창조의 역을 했던 정도전을 더 높이 평가하는 것이 철학사와는 상이한 역사 서술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둘째로 이이와 이황의 서술 순서 문제에 대해 철학사의 관점을 떠나 역사의 테두리에서 보면 양자가 주장하는 근본 입장이 틀리기 때문에 이이가 시기적으로는 이황보다 뒤늦으나 초기 사림파의 학풍을 이은 것은 이이이기 때문에 서술 순서 상 후기 사림파의 학풍을 대성한 이황보다 앞에 서술한 것이 순서의 잘못일 수 없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토착 지주의 이익 옹호」귀절을 「유물 사관적 역사 서술」이라고 지적한데 대해 유교가 이조의 정신적 지주였고 양반층을 옹호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에 유교의 기능을 알아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유물 사관」에 입각한 사회 경제사를 읽는 기분이라고 평한 것은 사실의 입장에서 볼 때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끝으로 김 교수는 성리 철학을 철학사의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사상사적인 측면에서 함께 보면 국사 교과서의 진의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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