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만가구 건보 자격 잃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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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2년 전 당뇨병이 생긴 朴모(57.강원도 원주시)씨는 그동안 일을 못 나갔다. 소득이 없어 1백50만원 가량의 건강보험료를 체납했다.

이 때문에 건강보험 가입자 자격을 상실해 병원을 못가 병세가 더 악화되고 있다. 게다가 13평형짜리 아파트를 압류하겠다는 건강보험공단의 통보를 최근에 받고선 불안하기 그지없는 상태다.

지역건강보험 가입자 1백명 중 17명이 朴씨처럼 아파도 병원을 못 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몸이 아파 진료를 받아야 하는데도 건강보험료를 내지 못해 의료 사각지대에 빠져 있는 것이다.

건강보험공단은 지난해 말 현재 3개월 이상 보험료를 체납한 지역건보 가입자가 1백49만1천여가구(2백43만명)에 달한다고 24일 밝혔다. 전체 지역가입자 8백70만가구의 17%에 달한다. 체납액은 7천2백37억원이다.

현행 건강보험법은 3개월 이상 건보료를 안내면 보험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체납자 중 32만가구는 재산이나 임금을 압류당했다. 일부는 지난해 자격이 상실됐는데도 건강보험을 이용해 35만7천건의 진료를 받았다가 2백여억원을 토해내야 할 처지다.

병원들이 환자들의 건보 자격 상실 여부를 즉석에서 파악하는 체계가 없기 때문에 뒤늦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체납자들은 실직.사업 실패 등으로 인해 소득이 없거나 생활이 매우 어려운 사람이 대부분"이라면서 "당장 급하지 않다고 건보료를 체납하다 몸이 아프면 연체료 때문에 병원을 못 가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체납 기간별로는 1년 이상인 경우가 68만8천가구며 이 가운데 2년 이상 못낸 경우가 41만가구에 달했다. 이들 장기 체납자들은 대부분 보험료를 낼 능력이 없어 장기간 의료 사각지대에 빠질 수도 있다.

반면 이들보다 생활이 더 어려운 사람들은 오히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생활보호대상자)가 돼 보험료를 안내도 의료혜택을 볼 수 있다.

건보공단은 체납자들이 한꺼번에 밀린 돈을 내기 어려운 점을 감안, 최장 18개월간 나눠 낼 수 있도록 하되 첫 회 분납액을 내기만 하면 건보 자격을 되살려주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월 건보료가 4천원이 안되는 저소득층 15만가구의 생활실태 조사를 통해 일부는 생보자로 흡수해 의료혜택을 줌으로써 사각지대를 줄여나가겠다"고 말했다.

신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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