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100% 여론조사 경선론' 의 무책임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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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방선거에 출마할 공천자 후보를 ‘100% 여론조사 방식’으로 선출하는 문제를 놓고 벌이는 새누리당의 논쟁은 블랙 코미디 같다. 편의에 따라 이리저리 말을 바꾸고 충돌하는 모습이 코미디 같은데 한국의 집권당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니 씁쓸한 것이다. 새누리당의 당헌 당규는 공천자 후보를 뽑는 당내 경선에서 일반 국민의 참여를 30%, 국민 상대 여론조사 결과를 20% 반영토록 하고 있다. 당내 경선에 비당원 요소를 50% 배합하는 게 정상적이냐는 논란도 있지만 새누리당은 아예 제주·세종시·호남 같은 특정 지역은 100% 비당원 요소, 즉 여론조사만으로 결정하면 어떠냐는 검토안을 지난 주말에 내놨었다. 예를 들어 제주의 경우 전국적 지명도는 있으나 현지의 조직력이 취약한 원희룡 전 의원 같은 사람을 경선에 끌어들여 흥행을 일으켜보겠다는 속셈이었다. 여기에 특정인을 위한 고무줄 경선이란 비난이 나오자 어제는 홍문종 사무총장이 원칙대로 되돌아가겠다고 슬쩍 발을 뺐고, 원 전 의원은 “100% 여론조사 경선이 안 된다면 그 즉시 30분 내로 불출마를 선언하겠다”고 반발했다. 금명간 새누리당의 최종 룰이 정해지겠지만 일부 지역일지라도 100% 여론조사 방식에 의한 경선이 벌어져선 안 될 것이다.

 선거에 참여하는 정당 후보는 자기 당의 철학과 정책으로 유권자의 선택을 받는다는 게 정당 민주주의의 기초다. ‘자기 당의 철학과 정책’을 담보하는 최소한의 장치가 당원의 후보 선택인데 이 선택이 50%도 아니고 100% 비당원에 의해 이뤄진다면 정당 민주주의의 흔적은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여론조사는 선거 결과를 예측하는 하나의 방법론에 불과하다. 여론조사를 공적인 의사결정의 보조 수단이 아닌 최종 수단으로 수용한다는 건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비당원에 의한 100% 여론조사 결정 방식은 2002년 노무현-정몽준의 후보단일화 이래 정치권에서 종종 유혹을 느껴온 의사결정 수단이지만 오늘날 정당 무책임론, 정당 허무주의의 한 배경이 되었다. 새누리당은 100% 여론조사 경선의 비민주성과 포퓰리즘을 직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