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논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프랑스」의 아이들이 일상 대화 중에 즐겨 쓰는 말이 있다. 「프리모」(primo) 「세쿤도」(secondo) 「테르티오」(tertio)라는 「라틴」어. 우리말로는 첫째·둘째·세째.
「프리모」는 이를테면 서론이고, 「세쿤도」는 본론이고, 「테르티오」는 결론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 「프랑스」에선 아이들까지도 무슨 말을 할 때면 이렇게 논리적인 체 한다.
학교교육을 살펴보아도 그렇다. OX식의 시험은 찾아볼 수도 없으며 모든 시험은 작문으로 대신된다. 때로는 수학문제까지도 제목을 하나 내놓고 『…논하라』는 식이다. 대학엘 들어가면 1학년부터 4학기동안 꼬박 「세미나」에 참가해야 한다. 논문작성법을 가르치는 연습시간이다. 그것은 마치 무슨 수학공식을 가르쳐 주듯이 구체적이고 빈틈이 없다.
가령 이런 도식이 제시된다. 서론은 한 점에서 끝이 나야하고, 본론은 이점에서 두 갈래로 다양하게 갈라지고, 결론은 다시 한 점으로 집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식으로 그리면 「다이어먼드」형이 된다. 이것을 논문을 작성하는 기본도식으로 삼는다.
「프랑스」 대학생들의 시험은 물론 그런 논문으로 대신된다. 논문시험시간은 무려 4시간. 그 중간에 10분 동안 휴식이 있다. 학생들은 한나절을 그 논문 쓰기에 매달려 있다. 「커닝」따위는 생각할 겨를도 필요도 없다.
논문이 끝나면 이번엔 구술시험이 있다. 이 경우는 논문보다 더 땀이 난다. 교수가 보는 가운데 자신의 실력을 확인시켜야 하는 것이다. 결국 이런 과정을 거쳐 학사가 되는 학생은 입학생의 35%뿐이다. 그나마 최근에 다소 완화된 것이 그 정도며, 68년 학생「데모」 이전엔 10%도 어려웠다.
독일(서독)의 경우는 국가시험제(Diplom)를 채택하고 있다. 그것은 자격 아닌 허가시험으로 몇 번이고 거듭해서 응시할 수 있다. 많은 학생은 낙제를 하면 그대로 몇 학기 이수했다는 증명만을 가지고 사회에 나간다. 특수분야를 제외하고는 별 불편이 없다.
미국의 대학생활도 수월치는 않다. 거의 하루도 빠짐 없는 숙제·시험(퀴즈)·수강(세미나)에 쫓겨 눈코 뜰 새가 없다. 가령 숙제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수강을 해도 따라갈 수가 없다. 그런 고통스러운 「터널」을 지나야 비로소 졸업의 영광을 얻을 수 있다.
이제 우리 나라에서도 졸업 논문제를 엄격히 실시할 모양이다.
세 번째 낙제하면 학생은 수료증만 받게 된다. 앞으로 대학에선 그 교육의 방식·내용에 일대 개신이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 「OX선수」들에겐 모든 것이 생소하기만 할테니 말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