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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로서 있는 6·25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비록 먼 과거에 일어났던 일이라도 그에 대한 철저한 단절이 가능하지 않는 한 그 사태는 하나의 생생한 역사적 현재로서 남는다.
6·25 동란은 벌써 25년 전의 일이었지만 북괴가 6·25당시에 가졌던 남침의 의사를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있을진댄 그때의 처절했던 민족적 참극은 오늘 이 시각에도 뼈저리게 반추되고 재음미될 수밖에 없다. 아직도 우리의 뇌리와 가슴속에는 그날의 분노와 상흔이 가실 수 없는 한으로 응어리져 있다. 6·25는 그래서 우리의 생생한 현실이요, 정신상황인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문명이니 문화니 하는 것들의「보편성」을 말한다. 그러나 어떤 민족에 있어서는 그들이 경험했고, 또 그들만이 느끼는 극한적인 체험이 보다「리얼」한 박진성과호소력을 갖는 법이다. 그 체험은 한 민족의 사고와 정념의 원점을 이룬다.
25년 전의 오늘 평화로운 일요일 새벽의 정적을 깨뜨렸던 적의 포성과 다발총소리, 그리고 그 뒤를 이었던 무시무시한「인민재판」과 정치보위부의 공포, 수많은 납북인사들과 그 유가족의 통분, 「의용군」강징과 학살과 만행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끔찍한 악몽에서 우리는 헤어날 길이 없이 지난 25년의 시간을 축적해 온 것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민족적인 체험이며 현실이요, 교훈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6·25는 우리 민족으로 하여금 가장 농축된 형태로서 현대세계의 핵심문제들과 대결하여 그것을 몸소 아프게 체험하고, 그 문제점을 대변·극복하려 몸부림치게 한 최초의 계기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슬기로운 민족이라면 지나간 수난의 악몽 때문에 시달리기만 해서도 안 된다. 그 악몽에 내재하는 고통의 의미와「메시지」를 올바로 터득하여 이를 밝은 내일에의 지표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이 점은 북괴가 오늘에 와서도「제2의 6·25」도발을 망상하고 있다는 사실로 인해 더욱 절실한 타당성을 갖는다.
북한지역을 뒤덮고 있는 김일성 권력구조의 성격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에 대한 북괴의 기본전략이 단 한가지도 그때와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경화된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다.
김일성의 우화적인 신격화는 고대「이집트」의 제왕인「파라오」의 처지를 무색케 할 지경에 이르렀으며, 그「유일 사상」과 주술사적 지배의 합리화를 위해서라도 북괴는 끊임없이「남한혁명지원」이라는 호전적 도발을 자행하고 있는 요즘이다.
전 주민을 침략전쟁 준비에 총동원하는 한편, 국제적인 좌경세력의 단합공작을 노골화하면서 우리사회의 불안조성을 촉진하여 제2의 월남사태를 유발하려는 것이 북괴의 속셈임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 그들이 요즘에 와서는 또 철면피하게도「평화」니「자주」니 하는 말을 다시 들먹이고 있다. 그러나 6·25 직전에도 북괴는 똑같은 위장 평화공세로써 무력 적화통일의 저의를 분식하려 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렇듯, 북괴가 불가침협정을 거부하면서도「평화」를 뇌까리고,「평화」를 가장하면서도 전쟁준비를 가속화하고 있는 사실이야말로 6·25를「과거」로서가 아니라 오늘의「현재」로서 파악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방비태세는 우리의 귀중한 후속세대로 하여금 또다시 저들의 끔찍스런 다발총소리와 「인민재판」과 학살로 희생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도 절대로 필요하다.
잠시라도 우리 안에 허술한 빈틈을 노출시킨다면 6·25는 바로 내일의 일일 수도 있다.
오직 굳건한 안보태세와 자주국방력 량의 확보만이 25년 전의 값비싼 희생으로 수호한 우리의 강토와 이상을 두 번 다시 유린당하지 않게 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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