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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속의 자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요즘 강의실에서 한국에 유학 온 크메르 학생을 볼 때마다 내 가슴은 아프다. 말없이 침울한 그의 얼굴에는 나라 없는 민족의 슬픔이 엿보여지는데 나는 연민의 정과 함께 전율을 느끼게 된다. 박약한 정신력과 퇴폐적인 국민들의 자세가 사회와 국가를 멸망케 하는 근본원인임을 새삼 깨닫게 되고 요즘 국내에서 일어나는 부조리에 염려가 미치기 때문이다.
물론 요즘 국내에서는 사회의 부조리 일소작업이 한참이기는 하다.
그동안 파헤쳐진 몇가지 사건만을 보더라도 우수영화선정을 미끼로 뇌물을 받은 공무원, 범죄단을 협박하여 이익분배에 한몫 낀 경찰관, 박사칭호를 판 목사·위장이민을 기도한 보석상인, 많은 외자를 은닉하고 한화도 숨겨두었던 부실기업체 사장, 나이도 아직 젊은 재벌2세의 외화유출과 방탕한 엽색행각 등.
이들이 향락에 탕진하는 돈은 어디에서 생긴 것일까. 그들이 재산을 해외로 도피시키고 향락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 우리 모두가 피땀을 흘렸단 말인가?
얼마 전 영등포의 어느 공장을 방문했을 때 폣병2, 3기를 연상케 하는 창백한 얼굴의 수많은 여공들이 화학약품의 악취에 숨이 막힐 듯한 방에서 묵묵히 작업을 하고있는 광경을 보았다. 임금은 상상 못할 만큼 저수준이었으며 작업환경과 건강관리는 위험상태에 놓여있었다.
그래도 내일의 가느다란 희망을 바라보며 생활 아닌 생존을 위해 고난을 참고 발버둥치는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몰지각한 일부부유층과 상류층의 교활하고 음탕한 생활단면의 보도에 접할 때마다 이들은 얼마나 크나큰 충격과 배신감에 차있었을까.
물론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곳에서는 능력에 따라 돈을 벌었다는 사실이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나 결국 사회의 것인 돈은 정당하게 벌고 깨끗하고 공정하게 관리해야하며 사회를 위해 가치있게 쓰여져야 한다.
자기와 자기가족만 살면 민족이나 국가가 어찌되든 상관없다는 이기적이고 교활한 사고방식과 불법행위는 결코 용서될 수 없는 것이다.
예부터 우리민족은 정신적인 민족이라 자부해왔다. 정신과 물질이라는 이원관계에 있어 물질에 정신이 어두워지는 것은 인간이하의 행위라고 우리조상들은 여겨온 것이다.
물질문명이 발달한 오늘날에 이런 전통적인 미덕만을 고집할 수는 없겠지만 깨끗하고 올바른 사고에 의한 삶의 자세는 언제나 숭고한 것이다.
부조리일소와 서정쇄신 등의 사회정화작업은 행정적이거나 또는 법적인 차원에서만은 해결이 될 수 없는 것. 그 효과 또한 본질적인 것이 못된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 모두가 이제 자신을 위하는 마음 못지 않게 타인과 사회를 생각하면서 「사회 속의 자신」을 발견하여야할 때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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