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대책 제l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전북 김제군 부량면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관개용 저수지인 벽골제의 유적이 있다. 이를 중 심하여 그 남쪽을 호남, 서쪽을 호서지방이라고 부를 만큼 그 규모가 컸었다. 이 벽 골제는 신라 흘해왕(기원 330년)때 쌓은 것이라고 하니 아득한 옛날에도 우리 조상들이 치수·관개사업에 얼마나 힘썼던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 뒤에도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농자를「천하지대 본」이라 일컬을 만큼 농업에 힘을 기울였고, 그 중에도 특히 도 작을 그 기본으로 삼았던 까닭에 수리·관개사업은 촌락별로 또는 국가적 규모로 이루어져 왔던 것이며, 이 같은 사업의 추진은 각 시대의 정치와도 깊은 관계를 가졌던 것을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
효과적인 물의 이용과 치수·관개사업은 오늘에 있어서도 민족의 흥망성쇠와 직결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래 우리나라는 이 문제를 너무도 소홀히 해 온 감이 없지 않다.
거의 해마다 물로 인한 막대한 피해와 재난을 겪고 있는데, 가뭄에서 오는 한해와 폭우·홍수에서 오는 풍수해가 바로 그것이다.
올해도 벌써 중부지방에 달포 째 심한 가뭄이 들어 모내기에 큰 지장을 주고 있고 서울시내 고지대와 변두리 지역은 식수난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수산 부는 20일 한해대책 1호를 발표, 60%밖에 진척되지 않은 모내기에 비상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따져 보면 계절풍지대에 속하는 우리나라의 강우량은 연평균 1천1백59㎜로서 세계평균 7백26㎜를 훨씬 상회하고 있으며 한발에 시달려야 할만큼 물의 절대량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 내리는 비의 총량은 한해에 1천1백40억t이나 되는 엄청난 양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통제·이용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44.7%인 5백10억t은 지하로 스며들거나 증발해 버려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나머지 6백30억t(55·3%)에 불과한 실정이기는 하다.
그러나 문제는 이 6백30억t도 다 이용하지 못한 채 61·9%인 3백90억t은 홍수로 단번에 바다로 보내 버리고 나머지 2백40억t 중에서도 1백50·8억t은 평상시 바다로 흘러가게 버려 두고 있으며 오직 전체의 7·8%에 지나지 않는 89·2억t만을 생활용수·농업용수·공업용수로 이용하고 있는 한심한 실정에 있는 것이다.
비록 땅속으로 스며들거나 증발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할지라도 홍수 때와 평상시에 흘려 보내고 있는 것만을 잘 활용해도 현재보다 적어도 6배가 넘는 풍부한 물을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며 한재와 수해를 동시에 예방·경감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해마다의 한해나 수해를 마치 인력으로는 어찌 하지 못하는 천재로 체념하고 이에 대한 적절한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다가 재난이 닥치면 그때서야 당황하여 1호니 2호니 하는 대책을 발표하는 그런 고식적인 작태로 말미암아 예방하거나 줄일 수 있는 재해를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천재가 아니라 분명한 인재가 아니겠는가.
오늘날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천지개벽을 이륙할 기상무기 운운하고, 호주·「이스라엘」등에서는 인공강우로 사막을 녹색옥토로 바꾸고, 중공조차「기상무기부대」를 만들어 우박을 막아 농작물피해를 줄이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과학시대에 우리는 기우제나 지내고 논두렁에서 물싸움이나 하고 원시적 용 두레질이나 하고 있어서야 어찌되겠는가.
물 수급 및 수자원의 고도이용을 위한 다목적「댐」건설계획을 서두르는 한편, 수리·관개사업도 좀더 효과적으로 추진하고 양수기 등의 보급을 철저히 하여 한재와 수해에서 해방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바라마지 않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