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한 해로 답사의 의의 (1)|20일 인천 출항에 앞선 국내 학계의 평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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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일 학계가 처음으로 합동 연구 작업을 벌이는 삼한 해로 답사는 약 2천년전 한·일 양국에 있어서 국가 형성기의 교류 양상을 연구·파악하는 획기적 계기가 될 것이다. 오는 20일 인천 출항에 앞서 국내 학계를 통하여 그 전망과 문제점들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한국과 일본 북구주 사이의 해상 교통은 신석기시대에 시작되고 있다. 그리고 역사시대 이전의 선사시대를 통해서 그 교통은 언제나 북에서 남으로의 거의 일방 통행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남한의 즐문 토기가 서북 구주로 퍼져 들어갔고 도해했던 남한 후기 신석기인들이 북구주에서 가지고 돌아온 일제승문 토기 편들이 부산 동삼동에서 발견되고 있다. 신석기 다음의 청동기 문화도 일방적으로 북에서 남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러나 서기 1∼2세기께가 되면 한·일간의 해상 교통은 다원화되었으며 삼국지위지동이전의 변진전은 「변진에서 철이 생산되어 한·예·왜가 모두 와서 사 갔고 낙랑·대방군에도 공급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미 기원전 3세기께에 제철이 시작되고 있던 남한에서는 서기 1∼2세기께가 되면 고대 국가 형성이 시작되고 있었고 그러한 민족의 힘은 급증된 대외 활동으로 반영되고 있었다. 이 당시의 일본은 왜로 불리었는데 중국의 기록에도 소개되고 국가 발생의 본무대가 된 것은 구주, 특히 북구주였으며, 청·동·철기 문화가 먼저 일어난 곳도 역시 북구주였다. 중국과 한반도의 해변을 씻는 같은 바닷물에 해안을 출렁거리는 북구주가 일본에서의 새 문화도착지요, 발육지였던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서기 2∼3세기께 구주에는 수십의 조그만 호족 지배의 「국」들이 있었으며 그것을 통솔하는 맹주격이 여왕 비미호 (히미꼬)가 지휘하는 사마대 (야마다이)였다. 구주의 왜인들은 스스로 바다를 건너오기도 하였지만 서 북한에서 떠난 중국계 선박, 낙동강구에서 떠난 한선들이 건너가기도 하였으며 그 남행 선로는 위지동이전의 왜인전에 의하면 우리 나라 서해안·남해안을 따라 김해에 도달하고 거기서 대마를 거쳐 북구주의 말노국에 이르러 다시 이도국·노국·불미국·투마국 등 제국을 거쳐 사마대에 도착한다고 하고 있다.
위지왜인전은 우리 나라 서북 해안에서 북구주의 말노국 (현송포)까지를 약 1만리라 하였으나 전 항로에 며칠이나 걸렸는지 에는 언급이 없다. 물론 어떠한 배도 어떻게 항행하였는지도 써 있지 않다. 사마대는 일본 최초의 국가로서 그에 대한 연구는 당연히 천황, 천황 일족에 대한 문제도 다뤄야한다. 그래서 전전에는 자유롭고 과학적인 연구는 큰 제약을 받았으나 대전 후에는 그 규제가 풀려 사마대에 관한 연구는 본격화했고 기마 민족 도래설까지 한몫 끼여서 사마대하면 일본 전체가 귀를 솔깃하게 까지 되었다.
이번 해로 답사는 이것을 계획한 일본 왜인전 연구회는 이 수수께끼의 여왕국 구명에 그 궁극적 목적을 두면서 기록에는 나오지 않는 고대 항해의 실지를 체험하고 고대인들이 겪은 갖가지 고초, 그들이 발명하고 개발했을 항해술, 그리고 그 국제 항로에 소요된 시간을 체험하고 복원하여 고대 문헌의 해독과 해석에 새로운 시사와 계발을 얻어보자는 것이다.
이 일본「팀」과 합작해서 공동 답사에 나서는 우리 삼한 해로 답사회는 그러한 고대사 연구의 공통된 문제를 인식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우리 고대 문화나 정치사와 불가분의 관계에 서있는 북구주 고대사, 나아가서는 일본 건국사의 해명 참여가 곧 우리 나라 고대사 연구와 직결되는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이번 고대 목선은 4∼5세기께의 신라 가야선의 토제 모형과 일본측의 자료에 입각한 복원선으로서 모든 세부에서 2∼3세기 당시의 국제 항로선과 똑같다고는 말할 수 없으나 현재로서는 그에 가장 가까운 형태라고 생각하며 우리에게 고대 승선원들의 고생스러운 경험을 맛보게 하고 역사의 흐름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는데 충분하다고 믿는 바이다.
예기되고 또 예상 못하는 많은 난관들이 우리 답사의 앞길에 놓여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최초의 본격적 한·일 합동 학술 조사가 성공리에 끝나 한·일 두 나라 고대사 연구에 하나의 중요하고 기념스러운 전진의 계기가 되고 고대 문화 교류의 무대와 유적들이 화면을 통해 두 나라 국민들에게 소개되어 역사의 교육과 계몽에 이바지하게 되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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