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두천|김명인 (73년도 신춘 중앙문에 시 당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걸어가면 발바닥에 돋는 비 어느새
저녁이 되어
공지에 떨어지는 바람, 안개는
한 벌만을 지우며 돌아서고 있다.
내 귀에 갇히는 새들,
떠돌 곳은 다 떠돌아서
이곳 또한 정처 없나니
울지 말아라, 세상에 기댈 곳 없고
내 뜻인가 우리들은
철길에 들풀처럼 쓰러져 있다.
서로 정답게 혹은 남매처럼
키를 맞추며, 아버지
밤이면 아메리카를 꿈꿔도 될까요?
그러면 나라여, 한 발은
외로 고고 한 발은 절름거리며
머리 위로 저렇게 내리는 기차들.
고삐도 없이
헐떡거리며 찬비에 이끌리며
개울에서 개울로 떨어지는
이 욕된 살들을 흘러 보낸다.
무엇을 듣겠는가, 이곳이 말못할 때
부끄러운 빗 줄만이
흐느끼며 네 벼를 풀어가나니
새벽이 올 때까지
벗어둔 한 벌 옷 마저 챙기고
밤새도록 빗소리를 닦고 또 닦는다.

<이 시는>
입대하기전의 6개월, 나는 참 많은 모습의 동두천을 익혔다.
「케터필러」의 밤낮없는 금속음, 외출 중지의 항의를 위해 부대 정문에 늘어선 아귀 같은 창녀들, 그리고 내 꿈속의 끝없던 전쟁…. 동지의 바람처럼 썰렁하게 떠돌아, 이제는 더 갈 곳이 없던 사람들 틈에 섞이면서, 나는 밤마다 기차들의 기적소리에 이끌려 다녔다. 시가 체험의 한 양식이라면 이 기간 또한 내 시의 중요한 수가되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