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극의 역기능은 극복할 수 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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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국방송협회(회장 홍경모)는 『방송드라머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제2회 방송인 세미나를 12일부터 14일까지 3일간 산정호수호텔에서 개최한다. 방송작가·연출가·방송학자·문공부관계관 등 80여명이 참가할 세미나에서는 이진섭씨(KBS심의위원)의 『사극에 있어서의 사실과 고증의 문제』, 정인성씨(극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의 『국가안보와 반공드라머』, 이근삼 교수(서강대)의 『멜러드라머의 윤리성』등의 주제발표와 토론이 있다. 이중 이항령 박사(방윤 위원장)의 세미나 발제강연의 『방송드라머의 역기능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간추려 싣는다.
방송드라머는 사회와 일반대중에게 미치는 영향면에서 바람직한 기능과 바람직하지 못한 역기능이 있다.
이질적인 사람들에게 공동의식과 사회적인 합의를 얻게 함으로써 정신적 유대역할을 하는 사회적 기능과 인간생활에서 오는 피로·고독·불안·욕구불만 등을 해소시켜주는 정서적 기능은 바람직한 것이다.
반면 값싼 눈물, 헛된 웃음, 순간적 드릴, 황당무계한 풍자, 퇴폐적 분위기묘사 등은 사회윤리를 파괴하며 건강한 생활기풍을 해치는 역기능을 일으킬 위험성이 있다. 「방륜」이 74년에 방송된 TV드러머를 대상으로 조사 분석한 자료와 최근의 드라머(5월20일 이전)의 내용을 참고로 유형별로 문젯점을 제기해본다.
▲멜러드라머=74년도에 방송된 54편중 25편이 멜러물이다. 방송드라머의 역기능이 주로 이들을 두고 운위되는데 그 이유는 4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무대와 생활양식면에서 상류층의 가정과 그에 어울리는 호화스런 주변을 보여줌으로써 가난한 농어촌 시청자들에게는 소외감 내지 저항감을 유발하고, 도시인에게는 사치성과 소비성향적 풍조를 자극할 우려가 있다.
둘째, 인물성격면에서 여자주인공은 눈물과 한숨으로 현실에 순종하는 과거 지향적·숙명적 여인상과 내면적인 타당성도 없이, 걸핏하면 소란이나 피우고 퇴폐적인 언동을 일삼는 비뚤어진 현대여성상으로 양분된다. 남자주인공은 여인들의 틈바구니에서 전전긍긍하는 무기력하고 우유부단한 인물이 대부분이다.
예로서 『안녕』 『갈대』 『해바라기』 『맏딸』등의 출연인물들은 삶의 문제는 도외시한 채 모두가 애정중독자가 되어 방황하고 한숨짓고 술 마시는 게 고작이다.
세째, 스토리전개가 약속이나 한 듯 삼각관계, 이중생활 또는 혼전·혼외정사 따위의 소재로 아슬아슬한 호기심만 유발시키며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네째, 인간의 가장 원시적인 시기·모략·반목·행패 등을 타당성 없이 노출시켜 인간의 존엄성과 삶의 진실을 둔화시키고, 얄팍한 은어나 화술을 유행시켜 경박한 사회풍조를 조장한다.
▲사극=구한말 이전을 배경으로 삼고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한 드라머를 편의상 사극으로 분류해보면 54편중 12편으로 멜러물 다음으로 많다.
그런데 배경만 옛것일 뿐 무대는 주로 대궐이어서 호화로운 점에서나 여인을 주인공으로 최루적 감상을 노린 점에서나 현대멜러물과 별로 다를 게 없다.
주제나 스토리전개도 역사성이나 시대적 의미와는 거리가 먼 궁중암투·애정행각·모략중상 등 흥미위주로만 다루어 우리역사와 조상들에 대한 치욕감등을 유발케 하는 역기능적 요소가 두드러진다.
▲범죄수사극=가공이 아닌 실제의 범죄사건을 소재로 하기 때문에 강한 주제의식과 인간애가 결여되면 부작용으로 잔인한 장면이나 자극적인 요소만 안방으로 흘러들어가 정서순화에 유해할 뿐 아니라 무분별한 청소년들이 범죄수법을 모방케 하는 등 사회악을 조장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결론적으로 방송드라머의 역기능을 극복할 수 있는 좋은 드라머는 방송인·작가·경영자·스폰서·정부당국, 그리고 자율기관·연구기관·시청자들의 투철한 사명감과 공동의 노력으로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하겠다. <김종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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