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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 제명사용권 싸고 공방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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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문학작품의 영화화「붐」을 타고 문학과 영화간에 치열한 싸움이 전개돼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원작자의 승인 없이 영화사가 제명을 사용, 속편을 제작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화제의 초점.
문제의 발단은 조선작 원작·김승옥 각색·김호선 감독의 영화『영자의 전성시대』가 태창영화사에 의해 제작되어 관객 40만(개봉관)을 동원하는 큰 성공을 거둔 후 원작자인 조씨가 한진 영화사와 새로 계약을 체결, 『영자의 전성시대』를 제외한 작품 모두를「한진」이 영화화할 수 있도록 한 데서 비롯되었다.
「영자의 전성시대』의 대대적인「히트」에 힘입은「태창」은 조씨가「한진」과 새로 계약을 맺은 데 구애치 않고 속편제작에 착수, 「시나리오」작가 이희우씨로 하여금 속편「시나리오」를 탈고하고 촬영을 서둘렀다. 이러한 소식이 전해지자「한진」은 조씨에게『영자의 전성시대』속편이 다른 영화사에 의해 제작되는 것은 계약위반이므로 계약금(6백 만원)의 배액을 판상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태창」이 원작자의 승인과 관계없이 속편을 제작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①『영자의 전성시대』에 대한 영화화 판권은 곧 제명에 대한 판권도 의미한다 ②영화『영자의 전성시대』는 내용상 이미 원작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③『미워도 다시 한번』의 경우 속편에 대한 제작권이 영화사에 있다는 판례가 있다는 것 등이다.
그러나 조선작 김승옥 김호선씨는 이 같은「태창」의 주장이『한마디로 상식 밖의 주장』이라는 것이다. 조씨는「한진」과 계약하기 앞서「태창」으로부터 1백 만원을 받고 제명사용을 승인해 달라는 제의를 받았으나 거절했다고 밝히고 작가로서의 양심상 어떤 조건으로라도 속편제작에 동의할 수 없다고 못박아 말했다.
한편 각색자인 김승옥씨도 영화의 내용을 원작과 달리한 것은 각색자라서 불가피하게 느꼈기 때문이지 제작자의 요구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고 해명하고「시나리오」가 원작과 달리 표현됐다 해서 원작자의 영화에 대한 영향력이 배제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만약 원작에서처럼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죽었을 경우 속편제작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시비는 각색자에게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물론 각색자가 원작을 무시하고 내용을 마구 뜯어 고쳤을 때 원작과「시나리오」, 혹은 문학과 영화와의 거리는 그 만큼 넓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럴 경우라도 제명에 대한 모든 권리는 원작자에게 남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조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태창」이 속편제작을 강행하는 경우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결정은 법이 내릴 수밖에 없지만 이 시비는 문학작품의 영화화「붐」에 하나의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그것은 원작자가 자기 작품에 대한 애정을 가지지 않고 문학작품을 영화에 내던지듯 말아버림으로써 문학의 본질을 잃게 되고 따라서 이 같은 시비의 발단으로까지 발전하는 것을 막기 위해 문인 스스로가 자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규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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