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 세금만큼 전셋값 올리고 세금 피하려 다운계약 성행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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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세금 무풍지대였던 전세 보증금에 대한 과세는 전세시장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세금을 내야 하는 다주택자가 크게 늘어난다. 정부의 이번 대책으로 전세 보증금 과세 대상이 3주택 이상 보유자에서 2주택자로 확대되기 때문이다. 2012년 기준으로 2주택자는 115만4000명이고 3주택 이상 보유자는 21만1000명이다. 이들이 모두 세금을 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보유 주택 중 공시가격이 전용면적 85㎡ 이하이면서 공시가격 3억원 이하인 전셋집은 제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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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잠원동 한국공인 오상력 사장은 “세금이 많고 적음을 떠나 세금이 부과된다는 사실 자체가 집주인들에겐 충격”이라며 “벌써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주인들의 문의전화가 잇따르고 있다”고 전했다.

 집주인들은 세금을 보전하기 위해 전셋값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전세시장이 전셋집 부족으로 세입자보다 집주인 우위이기 때문이다. 경기도 성남시 태영경남114공인 김남일 사장은 “세금 신고 등에 따른 번거로움을 감안해 집주인들은 실제 부과되는 세금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전세 보증금에 전가할 수 있다”고 전했다. 박정현 세무사는 “전세 보증금 소득세가 전세시장에 그동안 없던 필요경비를 만든 셈”이라고 말했다. 세금을 피하기 위한 불법 계약도 우려된다. 계약서에 실제 보증금보다 금액을 낮춰 쓰는 ‘다운계약’이 성행할 수 있다.

 세입자들도 전세 보증금 과세가 반갑지 않다. 전세 보증금 2억8000만원을 내고 서울 상계동 전용 84㎡형 아파트에 살고 있는 박모(44)씨는 “집주인이 전셋집 여러 채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2개월 뒤 전세계약이 끝나는데, 주인이 큰 평수 보유 전셋집에 매겨지는 세금 때문에 우리 전셋값을 더 올리지 않겠느냐”고 걱정했다.

 이 때문에 전세와 월세를 두고 집주인들의 손익계산이 분주해졌다. 집주인은 세금 금액과 수익률을 따져 전세와 월세 중 선택을 할 것이다. 세금만 두고 보면 전세가 유리하다. 월세는 보증금의 6~7%인 데 비해 세금 부과 기준인 전세 보증금 소득은 보증금의 2.9%여서다. 같은 보증금이라 하더라도 월세 소득이 전세 보증금 소득의 2배 이상인 것이다.

 하지만 세금을 감안한 수익률은 다르다. 집주인은 세금을 제외하고 남는 수익을 비교해 임대방식을 결정하게 되는데 이런 점에서는 월세가 낫다. 월세 수입이 전세 보증금 이자소득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소득 차이에 비해 세금 차이는 작다.

 김종필 세무사는 “세후순이익이 월세냐, 전세냐를 결정짓는다”며 “지역이나 임대 조건에 따라 다르겠지만 집주인들이 매달 꼬박꼬박 현금이 손에 쥐어지는 월세를 선택할 것”으로 분석했다.

 월세에 대한 세입자들의 선호도도 높아질 것 같다. 전셋집이 월세로 바뀌면 월세주택 공급이 늘어서다. 직장인 김모(38)씨는 “전세 보증금 목돈이 없어 월세가 부담스러워도 월세를 살 수밖에 없는데 월세가 내리면 가계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전세에서 월세로의 전환이 빨라질 전망이다. 지난달 말 정부의 월세 소득 과세 방침 발표 이후 월세에서 전세로 돌아서던 주인들이 다시 월세로 방향을 틀 것으로 보인다. KB국민은행 박원갑 부동산전문위원은 “전세 보증금 과세가 전세 축소와 월세 확산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전세 보증금 과세는 주택 매매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본다. 전셋값이 올라가면 전세에서 매매로 돌아서는 수요가 늘게 마련이다. 명지대 권대중(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가 고액 전세 보증금 대출 지원을 줄이기로 해 전세에서 매매로의 전환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장원·황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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