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톰' 21세기 옷 입고 재기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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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부터 22일까지 도쿄 빅사이트에서 열린 제2회 도쿄 아니메 페어(Tokyo International Animation Fair.TAF)는 '명작은 시대를 초월한다'는 평범한 진리와 신.구 애니메이션의 조화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일본 애니메이션산업을 세계 초일류로 끌어올리기 위해 문화산업 전시회로는 최초로 정부기관(도쿄시)이 지원하는 이번 행사에서 가장 돋보인 코너는 올해로 탄생 40주년을 맞은 '우주소년 아톰'이었다.

1963년 등장해 총 1백93편의 TV프로그램으로도 방영됐던 희대의 화제작은 21세기를 맞아 새로운 모습을 선보이며 재기를 꿈꾼다.

부스에선 거대한 아톰 모양의 풍선과 주제가가 분위기를 띄웠다. 인간의 마음을 지닌 로봇 아톰을 추억하는 세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아톰의 재기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듯하다.

주인공은 영웅이고 인류를 구하기 위해 싸운다는 기존의 공식을 완전히 뒤집으며 젊은이들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를 얻었던 '신세기 에반게리온'(1995) 역시 관람객을 유혹했다.

고독과 인간소외, 타인에 대한 몰이해 등 인간의 이야기를 심오하게 담아 로봇 애니메이션의 새 장을 개척해 화제가 됐던 만큼 리뉴얼의 성공가능성에 대한 기대도 크다.

이들이 흘러간 명작 애니메이션의 대표라면 일본의 잠재력을 보여준 '창조적 개발자의 세계(CREATOR'S WORLD)'도 눈길을 끌었다. 이곳은 젊은 크리에이터들의 캐릭터를 전시한 곳으로, 기존 캐릭터들에 비해 인지도는 떨어지지만,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 오히려 신선감을 주었다.

2D부터 클레이메이션까지 다양한 기법을 이용한 새로운 캐릭터들은 앞으로 일본의 애니메이션 산업이 꿋꿋하게 성장할 것임을 잘 보여주었다.

하지만 일본 애니메이션의 미래를 담았다는 이곳이 한국의 애니메이션 투자자들에게는 역설적으로 '한국 애니메이션의 성공 가능성'을 보여주는 곳이 아니었나 싶다.

이곳에 전시된 캐릭터들은 다양하고 멋있었지만, 현재 한국에서 활동 중인 젊은 크리에이터들의 작품과 비교해볼 때 한국 캐릭터들의 가능성이 더 커 보였다.

5개 부문 시상에서 한국 작품이 3개 부문(파일럿콘텐츠.학생.기업스폰서)을 휩쓸었다는 개막 첫날 소식에서 이런 자신감을 더욱 얻었다. 이번 행사엔 국내 13개 애니메이션 업체가 참여했다.

'마리이야기''바다의 전설 장보고' '엘리시움'등 세 편이 상영됐고 특별상영회장에서는 '원더풀데이즈' 극장 예고편 등이 행사기간 내내 상영되며 인기를 모았다.

이런 선전에 비추어 일본 정부가 보여준 것만큼의 노력을, 한국 정부가 한국의 젊은 크리에이터들에게 보여준다면 한국 애니메이션계도 큰 성과를 거둘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전시장 내에 한국공동관을 설치해 참가 기업들의 홍보활동을 도왔다. 국내업체들도 일본의 주요 관계사들과 공식적인 네트워크 형성에 주력했다.

올해 프랑스 안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국내 작품들이 대거 본선에 진출한 소식과 이번 TAF에서 보여준 국내 애니메이션 업체들의 활약은 한국이 일본을 대신해 동아시아 애니메이션 산업의 중심으로 우뚝 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한국 애니메이션이 동아시아의 허브를 형성할 수 있도록 업계, 학계, 정부가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마음을 열고 머리를 맞댈 시점이다.

앙지혜 <캐릭터플랜 대표.극장용 애니메이션 '망치'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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