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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파병은 최후 수단 … 크림반도 합병 고려 안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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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우크라이나 사태 해법을 놓고 미·러 간 힘겨루기가 치열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군 수뇌부와 함께 헬기를 타고 가 상트페테르부르크 인근에서 열린 군사훈련을 시찰했다. 앞줄 왼쪽부터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 푸틴 대통령, 아타톨리 시도로프 서부군구 사령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첫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4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외곽 관저에서 러시아 관영 매체 소속 기자들을 상대로 한 회견에서 “현 우크라이나의 과도정부는 불법”이라고 주장한 후 “크림반도 합병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다음은 회견 주요 문답.

 - 최근 사태에 대한 견해는.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2월 21일 야권과 협상을 통해 권력을 포기했다. 하지만 반헌법적인 쿠데타가 발생했다. 야누코비치가 탄핵 등 적법한 절차를 통해 대통령에서 물러난 것이 아니기에 그는 여전히 유일한 합법적 대통령이다. 현 과도정부는 불법이다.”

 - 크림반도에 거주하는 러시아계 주민들이 크게 위협을 받고 있나.

 “주민들이 불안해하고 보호를 요청하면 우리에겐 도와야 할 의무가 있다. 우크라이나에 군대를 보낼 필요가 없지만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의무가 있다. 현재 우크라이나에 네오나치와 인종주의자들이 많이 모여 있다. 하지만 군대 파병은 최후의 수단이다. 그리고 러시아는 크림반도의 합병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분리주의 운동도 지원하지 않을 것이다.”

 -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서방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데.

 “서방은 우리의 행동을 불법으로 간주하고 있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이라크·리비아에서의 미국의 행동을 봐라. 우리는 국제법 테두리 내에서 행동했다. 러시아에 대한 위협은 서로에게 해가 될 것이며 서방 측은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 우크라이나 주둔 병력 증강에 대해서는.

 “크림반도의 무장세력은 러시아군이 아닌 지역의 자경단이다. 비슷한 군복은 많다. (흑해함대 기지에 병력을 증강한 것은) 야누코비치의 요청이 있었다.”

 - 야누코비치를 도운 이유는.

 “그에겐 더 이상 정치적인 미래가 없다. 하지만 그가 우크라이나에 계속 있었다면 살해됐을 것이다. 인도주의적인 측면을 고려한 조치다.”

 - 6월 러시아 소치에서 열리는 주요 8개국(G8) 회의에 서방의 불참 선언이 있었는데.

 “우리는 회의를 위해 모든 준비를 하고 있다. 안 오겠다고 하면 올 필요 없다.”

 - 우크라이나 국경 인근 병력들이 철수하는데.

 “접경 지대에서의 군사훈련은 이미 예정돼 있었다. 훈련이 끝났기에 원래 주둔지로 복귀하라고 명령을 내린 것뿐이다.”

 - 이번 사태로 루블화 가치의 폭락 등 러시아 시장이 긴장하고 있는데.

 “러시아 시장이 불안정했던 것은 우크라이나 사태 이전에도 그랬다. 신흥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일시적인 현상일 것이다.”

4일 우크라이나를 찾은 존 케리 미 국무장관(오른쪽에서 둘째). 케리 장관이 반정부 시위의 잔해가 남아 있는 키예프 시내에서 시민들로부터 당시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키예프 AP.로이터=뉴시스.뉴스1]

 푸틴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는 그 시간에도 크림반도는 계급장 없는 군인들이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러시아 번호판을 단 차량을 타고 나타난 군인들은 자신들의 신원에 대해 철저히 함구하고 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이들은 크림반도의 주요 군사시설은 물론 러시아 국경에서 20㎞ 떨어진 항구도시 케르치의 페리터미널까지 차례로 손에 넣었다. 이와 관련해 AFP통신은 군사전문가들을 인용해 “주요 시설을 점령한 병력들이 러시아 공수부대 장비를 사용하고 있다”며 특수부대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날 벨벡공항 군사기지에선 친러시아 병력이 “일자리를 돌려달라”며 행진하던 우크라이나 군인들을 향해 경고 사격을 가하기도 했다. 인근 도시에도 러시아군이 진입하고 있어 우크라이나계 주민들은 러시아가 크림반도 외 지역까지 점령을 확대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4일 우크라이나 키예프에 도착한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알렉산드르 투르치노프 임시 대통령과 아르세니 야체뉵 과도정부 총리를 만났다. 케리 장관은 “미 정부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에너지 보조금을 삭감할 경우 그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10억 달러 규모의 차관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3일 팽팽한 긴장 속에서 소집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각국의 입장 차만 확인하고 끝났다. 유리 세르게이에프 유엔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는 “지난달 24일부터 러시아가 크림반도에 군용기·헬기·전함 등 1만6000여 명의 병력을 파견했고, 완전한 작전 준비를 마쳤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탈리 추르킨 러시아 대사는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소수 인종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합법적 행동”이라고 맞섰다. 서방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러시아에 물러날 것을 경고하고 있지만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모스크바는 여전히 “우크라이나 ‘정상화’만이 위기를 끝낼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에게 정상화란 지난달 말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과 야권 대표와의 협상에서 나온 합의안 이행을 뜻한다. 이를 우크라이나 과도정부가 받아들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중국의 모호한 태도=중국은 동유럽의 전략적 요충지인 우크라이나와 오랜 우방 러시아에 양다리를 걸치는 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3일 러시아 외교부는 “중국과 폭넓은 의견 일치가 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국 외교부는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는 원론적인 말만 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의 독립 주권과 영토 보존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뉴쥔(牛軍)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교수는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성명”이라며 “지난해 12월 위기에 몰린 야누코비치 대통령을 지원하는 등 우크라이나 상황을 오판한 중국이 보기 드문 외교적 곤경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서울=신경진·전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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