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철수난민 부산에 도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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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부산=임시취재반】한국교민과 월남난민 등 1천3백64명을 태운 한국해군LST 815·810호 등 2척의 난민수송선이 13일 상오9시5분쯤 부산항 중앙부두에 접안, 난민들을 상륙시켰다.
지난 4월26일 하오 6시쯤 「사이공」 「뉴포트」항을 출발한 두척의 LST는 17일간 2천8백여 「마일」의 긴 항해 끝에 12일 밤 9시30분 마중나간 검역선 LST808호와 거제 앞 바다에서 만나 밤새 검역을 마친 다음 내항 중앙부두에 들어선 것.
난민수용소 관리본부(본부장 권순면·부산시 기획관리실장)는 수송선이 부산항에 도착, 난민들이 상륙하자 즉시 대기시켰던 31대의 「버스」에 이들을 태워 임시수용소로 쓰일 서구대신동 구 부산여고로 모두 이송했다.
관리본부는 난민들을 전원 임시수용소에 수용한 다음 입국절차를 밟게된다고 밝혔다.
난민들이 도착한 중앙부두에는 박영수 부산시장, 강영수 경남도지사 등과 적십자대원, 구호관리본부 관계자들과 1천여명의 한국교민들의 가족·친지들이 몰려 마중했다.
관리본부에 따르면 부산에 도착한 1천3백64명의 월남철수난민들은 전 주월대사관직원 및 주한월남대사가족 23명 이외에 구호대상자 1천3백64명으로 이중 한국인이 3백19명·월남인이 9백88명·중국인 33명·「필리핀」인 1명 등인데 월남인중에는 한국교민의 월남인 처와 자녀 6백59명과 순수월남인 3백29명이 포함되어있다.
【부산=임시취재반】『전란을 피해오느라 고생도 많았소』-우리교포와 월남난민을 태운 해군 LST2척이 13일 상오9시쯤 부산항 중앙부두에 닿자 부두 앞에는 마중 나온 난민 연고자들과 시민들이 몰려 혼잡한 가운데서도 박수로 환영했다. 오랜 항해의 피로와 정든 땅 고향을 잃은 슬픔에 빠져있던 이들은 LST2척이 오륙도 앞바다를 거쳐 부산내항중앙부두에 닿자 갑판에 나와 기쁨의 만세를 부르기도 했으며 「감·옹」(고맙다)을 연발했다.
이들은 상오8시부터 대기했던 난민수송용 「버스」31대·「앰뷸런스」·군「트럭」·경찰차 등 80여대의 차량에 실려 임시수용소인 구 부산여고에 수용돼 17일만의 먼 여로의 피로를 풀었다.

<월남여인 첫 하선|중앙부두>
13일 상오8시22분 해군LST810호가 오륙도와 아치섬 사이로 회색의 선체를 나타내자 중앙부두에 대기 중이던 적십자남녀봉사대원 2백67명과 안내하러 나온 부산 덕원공고생 49명 등이 함성을 지르며 두손을 높이 흔들어댔다.
이때 갑판에 나와있던 난민들이 손을 마주 흔들어 응답했고, 선상의 해군장병들이 「마스트」에 내걸었던 월남기를 내리고 태극기를 게양했다.
해군810함이 상오8시30분 중앙부두에 접안하자 서영석군(20·부산시 중구 대창동 2가7) 등 5자매는 10년전에 파월 됐다가 귀환선을 탄 것으로 알려진 아버지 서정우씨(47·파월냉동 기술자)의 이름을 붓으로 쓴「피킷」을 들고 아버지를 찾고있었다.
대책본부는 상오9시5분 난민들에게 상륙을 허가, 맨처음 「아오자이」차림에 손가방을 든 「조우·제·와」여인(28)이 아들「종·인·량」군(5)을 안고 내려서고 이어 45명의 월남인들이 상륙, 해군헌병과 덕원공고생들이 도열하듯 늘어선 사이를 걸어 대기 중이던 동명목재소속「버스」에 타고 구 부산여고에 마련된 수용소로 향했다.
부두에는 「치우」전주한 월남대사부처가 상오9시쯤 마중 나왔다가 먼저 810호에 올라 월남난민들에게 『먼길을 오느라고 고생했다』는 요지의 간단한 인사말을 하고 내려왔다.
주한월남대사관 무관 「투엔」중령은 LST815호를 타고 온 누님3명과 그 가족 8명 등 11명의 친척들을 한꺼번에 만나 기쁨에 어쩔줄 몰라했다.
난민들은 거의가 손가방과 물「컵」·식기 등 간단한 휴대품을 들었고 여인들은 대부분 줄이 서도록 다린바지와 「스웨터」를 입었다. 신발은 「비닐·샌들」을 신었으나 화장을 짙게 하고 「루지」까지 칠했으며 「밍크·코트」차림의 여인들도 눈에 띄는 등 옷차림에 신경을 썼고 예상외로 건강한 모습들.
난민들은 항해 중 라면을 주로 먹고 건빵 등을 간식으로 먹었으며 LST선실이 너무 더워 갑판 위에 30여개의 천막을 치고 생활해왔다.
한 교민의 말에 따르면 항해도중 7개월 된 월남어린이가 탈수증이 악화, 숨지기도 했다는 것.
한편 815함상에서는 지난 4월27일과 지난 3일 월남부인들이 옥동자를 각각 분만, 해군장병들은 옷가지와 음식물 등을 마련, 이들을 돌보기도 했다.
수송책임장교의 하나인 곽홍수 대위는 항상 생활이 무질서하고 구토와 설사환자가 대부분이어서 불결했으며 질서유지에 진땀을 뺐다고 고충을 말했다.

<한방에 33명씌 수용|수용소>
난민수용소에서는 정오까지 난민들이 도착하자 첫 식사 「메뉴」로 혼합 곡밥과 계란국·김치·잡채(당면·돼지고기·파·채소로 조리)로 꾸며 제공했다.
수용소에 도착한 난민들은 남녀5명의 안내로 일련번호에 따라 10명씩 하차한 다음 각방 안내원의 안내를 받아 1호실부터 차례대로 짐을 풀기 시작했는데 한방에는 33명씩이 수용됐다.
1호 차에서 내린 「치·민·합」여인(35)는 업고 온 3살 짜리 딸을 부둥켜안은 채 두고 온 친정부모의 안부가 궁금하다면서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난민수용소인 부산여고 앞벽 곳곳에는 국내에 있는 가족들이 귀국하는 친척들을 찾는 벽보가 곳곳에 나붙어있다. 대개 흰 전지에 「사인·펜」으로 쓰인 이들 벽보들은 한글과 영어를 섞어서 벽보를 보는 대로 연락을 해달라는 주소와 전화번호들을 간결하게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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