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와 줄리엣|김영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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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우리집의 로미오는 나야
뻐드렁니에 팔자 눈썹을 달고
그렇고 그렇게 되어 가는 세태를
한세상 일괄 체념하려는 기가 보인다
이 말이지 그럼 줄리엣은?
물론 네가 되겠지 그 그릇에 그 그릇
너는 나의 동반자
잘나도 비틀, 못나도 꾸벅
이보라구 지금이 졸 때가
아니예요 로미오가 없어지면
(쥐도 새도 모르게)
줄리엣이 찾아 나서야지
그래야 사랑극도 얼추 진전이 있지
신경질만 팍! 나는 구만

<이 시는>「로열·발레」를 보고 온 날 「로미오와 줄리엣」 2인무는 객석에 앉았던 나를 숨도 못 쉬게 했는데 집에 돌아와서 서로 얼굴을 건너다보니까 한국의 「로미오」는 썩은 빗자루 같았다. 나는 요즘 내가 가진 서정의 「페이스」를 잃어 간다. 사설이 늘고 잡가에 가깝다. 당분간 이런 고비에서 맴돌 것 같은 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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