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나는 간첩 번호 1366호|「암흑 속의 23년」 참회의 수기 김일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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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나는 출판사·운수 관계 부처 등에서 14년여 동안 「샐러리맨」 생활을 했지만 그쪽에서의 월급쟁이 노릇이란 고달프기 끝이 없는 것이었다.
내가 있은 중앙 부처의 경우 출근 시간은 아침 9시. 그러나 어느 직장이나 일에 들어가기 전 30분 동안 이른바 신문을 읽는 독보회가 있기 때문에 실제 출근 시간은 8시30분까지다.
1분이라도 늦으면 어김없이 출근부를 거둬 버리고 3번 지각하면 1일 결근으로 처리, 쥐꼬리 같은 노임과 식량 배급량을 또 깎는 등 빈틈없는 「체크」. 그래서 모두들 「체크」에 걸릴까 봐 허겁지겁 뛰는데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팔을 휘두르며 정신없이 걷는 모습이란 꼭 경보 대회를 방불케 하는 것이다.
오전 근무는 9시부터 하오 1시까지. 따라서 점심 식사는 하오 1시부터 시작되며 시간은 3시까지 2시간. 이 점심시간만은 비교적 넉넉한 셈이나 식당에서 사 먹으려면 「메뉴」가 상밥(백반)뿐이고 값도 1그릇에 무려 1원(4∼5식구 월 쌀값이10원정도)이나 돼 외식은 물론 점심을 낸다는 것은 엄두조차 못 낸다. 게다가 도시락 싸기 풍조도 별로 없어 모두들 뿔뿔이 흩어져 제각기 집에 가 먹고 와야 하는 것이다. 점심시간이 긴 것도 봐주는 것이 아니고 이 같은 실정 때문에 부득이한 조처. 따지고 보면 시간 낭비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어 하오 3시부터 6시까지의 근무가 끝나면 8시까지 2시간 동안 또 당 정책 학습 시간이 기다린다. 학습 과목은 당 대회 문헌·당 전원 회의 결정 통보서·김일성의 이른바 교시·논설·회상기 등등. 사실 1년 내내 이러고 보면 모두들 교시 등을 달달 외는 암기 기계가 되는 것이다.
8시 이후에는 물론 퇴근 시간이어서 퇴근을 해도 무방하나 실제는 일이 밀려 시간을 정하나마나. 거의가 자정까지 잔무를 보고 나야 집에 돌아갈 수 있다.
평일은 이런 반면. 토요일은 아예 「토요 노동일」로 정해져 아침부터 일을 전폐하고 「학습」만 한 다음 점심을 먹고는 바로 노력 동원에 참여토록 돼 있어 주말이고 뭐고 있을 수가 없다.
이에 모내기 전투 20일, 추수 전투 15일간의 기본 노력 동원이 있고 중간 중간 「깜빠니아」(대노동 「캠페인」)까지 겹쳐 도대체 「내날」이라는 게 없었다.
모내기·추수 전투는 기관마다 전 직원의 50%를 차출, 제각기 자기 먹을 양식과 부식을 싸지고 지정된 농장에 나가 거기서 농민들과 숙식을 같이하며 일을 하는 「시스팀」-.
때문에 노력 동원에 뽑힌 사람은 노동에 곯고 남은 직원은 나간 직원의 사무까지 대신 치다꺼리하느라고 또 곯고, 서로가 곯는 것이다.
정 몸이 아프면 일을 빠질 수는 있으나 반드시 의사의 진단서를 붙여 내야하며 그럴 경우도 식량만 주고 노임은 70%밖에 안 주기 때문에 가족들을 벌어 먹이려면 억지로라도 일터에 나가야 하는 것이다.
일 또한 능력껏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직장 별로 작업량을 도급으로 할당한 다음 현장에 속보판을 만들어 놓고 「마이크」로 진도를 따지며 채찍질하기 때문에 노예의 강제 노역을 방불케 하는 것. 『l백20% 달성』이니 어쩌니 하는 선전도 따지고 보면 이 같은 월급 노예들의 피눈물나는 사결과일 따름인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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