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4)<제45화>상해임시정부(29)|조경한(제자 조경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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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주「마즈」의 즉결>
구국군사령부에 진정서를 제출한지 며칠 안돼 하루는 영문밖에 요란한 말굽소리가 나며 중국군인 1명이 독립군 사령부로 들어왔다.
다름 아닌 구국군 14사단 부관인 지영민 장교였다.
나를 본 지는 첫마디가 진술서를 누가 작성했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무슨 잘못된 점이 있나하여 속으로 걱정이 되면서도 사실대로 내가 썼다고 했다.
그는 나의 두 손을 꽉 잡더니 『정말 명문이었다』면서 한동안 말문을 열지 못했다.
지부관은 『한국독립군장교들에 대한 군법회의 재판관들이 오사령에게 제출한 품신서가 총사령부 장교회의에서 낭독된 이후 이어 곧 나의 진술서가 낭독됐는데 장내가 그만 눈물바다가 돼버렸다』고 했다.
『참석자 중에는 심지어 목소리를 높여 통곡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사령 같이 무뚝뚝한 사람까지 눈시울을 붉혔다』고 그는 말했다.
나의 진정서 낭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오사령은 노기를 감추지 못하면서 『당장 주「마즈」를 잡아 들이라』고 호통을 쳤고 이에 용기를 얻은 여러 두목들이 일제히 일어나 진술서 내용대로 주 「마즈」를 당장 처치해 버리라고 상소했다는 것이었다.
마침내 주 「마즈」가 술에 잔뜩 취해 회의장에 끌려나오자 오 사령은 대뜸 격렬한 목소리로 『초내내가비 왕바단차우!(중국 하류층사회의 욕설) 이놈, 빨간 사냥개놈아, 네 죄를 네가 알렷다』라면서 대답도 듣지 않고 자신의 권총을 뽑아 즉결 처분해 버렸다.
이어 오사령은 곧 수감중인 독립군 장교들을 모조리 석방하라고 지시했다.
이같은 사실을 전달한 지부관은 나의 진술서 한장이 이같은 효과를 거둔 것이라고 치하했다.
정식석방은 다음날 군사재판석상에서 내려질 것이라는 지부관의 말에 따라 우리들은 석방인사 환영준비로 마음이 들떴다.
다음날 아침 지부관 말대로 3백여명의 독립군장교들이 일시에 풀려 나왔다.
그런데 어인 까닭인지 지청천 총사령과 공양원 두 사람만은 풀리지 않았다.
나는 곧장 군법회의 주심관에게 달려가 그 사유를 물었다. 주심관은 『이유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어젯밤 구국군 14사단장 채세영이 찾아와 두 사람은 제외하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와 더 얘기할 필요가 없어 채사단장을 찾아갔다.
『지·공 두 사람을 석방에서 제외시킨 이유가 무엇이냐.』
채=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어제 저녁8시께 오사령이 날 부르기에 갔더니 그런 말을 합디다.
『그럼, 이유가 뭐 같습디까.』
채=오사령이 나더러 말하기를 『본시 내 직성이 7, 8명은 죽여야 풀리는데 오늘은 주 「마즈」한놈만을 죽여 직성이 안풀리니 독립군 장교 두어명은 죽여야 겠다』고 합디다.
『그래, 그 소리를 듣고 뭐라 했소.』
채=물론 적극 반대했지요. 그랬더니 오사령이 벌컥 화를 내며 『3백여명의 장교를 다 석방하고 두어명 정도 죽이는데 그 소원을 못 들어 줄 이유가 어디 있느냐』면서 『이것은 나의 상습일 뿐 아니라 연림가(상마적의 집안)의 전통적 가풍인 고로 어길 수 없다』고 합디다.
나는 채씨의 말을 듣는 순간 이 사건의 조작인물이 바로 채씨 자신인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것은 채씨의 말에 앞뒤가 맞지 않는 점이 발견됐기 때문이었다.
본시 상마적의 가풍은 의협을 숭상하기 때문에 불의한 자를 제외하고는 한 사람도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일이 결코 없으며 단지 경우에 따라 인질이 기한이 넘도록 돈을 지불 안 하면 죽이는 수가 더러 있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전혀 그와는 별개성질의 것이고 오씨가 마적출신이기는 하나 지금은 의젓한 항일군대의 사령관인데 굳이 마적의 가풍을 내세울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았다.
또 오씨가 비록 무식하기는 하나 기품이 우직한 사람이라 한번 석방명령을 내린 것을 3시간도 못돼 번복할 위인 같지도 않았다.
필경 옆에서 누가 바람을 넣은 것이 분명했다.
채씨는 대전자 전투에서의 노획품 분배 때부터 지사령을 비롯, 우리 독립군과 감정이 좋지 않았던 관계로 필시 옹졸한 이자가 이번 기회에 보복을 하려는 것으로 생각됐다.
나는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빨리 손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오직 장 장군만 믿는다』는 말을 남기고 즉시 그의 숙소를 물러났다.
나는 그길로 5사단 참모장인 임강표에게 달려갔다. 지·공 두 사람의 생명이 경각에 달린 위급한 순간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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