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김일성 중공방문의 뜻|유근일<본사 논평위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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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일성은 1968년 9월과 1970년 11월 두 차례에 걸쳐「남한혁명」의 성격을「인민민주주의혁명」이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예의 민족주의라는, 본심에 없는 개념을 가장했다. 이른바「자주적」이고「평화적」인 통일이란 구호가 그 전략전술로 동원된다.
여기서 「자주」와 「평화」란 세계여론과 한국 민을 현혹시키려는 대단히 전략적인 개념임은 물론이다. 「자주」란 한국문제 또는 통일문제를 국제관계의 인과성에서 분리시키려는 의도로 사용된 수식이다.

<「민족해방재선」부식 혈안>
「평화」란 전략적 균형에 바 탕한 공존관계의 설정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한-미 관계의 현장이 타파된 이후에 그 타파된 상태하고 자기들하고「평화적으로」합작시키겠다는 뜻을 함축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한-미 관계의 현상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민족주의 감정을 이용해 월남형「민족해방전선」같은 깃을 부식하는 것이 북괴로서는 가장 바람직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의 분단은 미-소등 강대국간의 역학관계가 빚어낸 결과이지, 미군의 한국주둔으로 말미암아 초래된 사태가 아니다. 또 6·25이후의 한국사회는 공산당 지도하의「인민전선」이 30년대의 스페인이나 오늘의 월남에서처럼 호락호락 발붙일 만한 토양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괴가 그처럼 시종일관 공산당지도하의「통일 전선」구축집념에 열을 올려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김일성 권력구조의 경직성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김일성은 자신의 족벌독재를 유지하기 위해 그와 같은 교조적인 단순논리에 조금이라도 맹종치 않은 분파들은 좌경편향이니, 우익 기회주의니 하는 이유로 숙청해 버렸다.
김일성 일족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남한혁명」지원을 위한 건장 감과 교조적인 정치구호와 도발적인 대남 공작은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주민을 상대로 매일같이 한국의 사회상을 침소봉대하여 마치 혁명전야나 됐다는 듯이 왜곡 선전함으로써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려 했고 권좌를 강화해 왔다.

<미-중공의 화해로 충격도>
이러한 계략에 가장 충격적인 타격을 가한 것이 다름 아닌 미·중공 화해의 시동이었다.
남-북간의「당국간 대화」를 하자니 대남 혁명 공작이 명분을 잃게 되고 도발을 포기하자니 자기권력의 존립이 빛을 잃게 된다. 이 진퇴양난의 곤경에서 새로이 안출된 탈출구가 바로「닉슨·독트린」과 제3세계의 동향 및 중공 세를 역이용한 국제적인 반미통일 전선전략이다. 여기엔 특히「하노이」방식의 대미협상 패턴과 그에 대한 미국자유주의자들의 반응, 그리고 인지에 있어서의 미국의 역할에 대한 제3세계 좌경지역의 규격화된 여론이 이용대상에 올랐다.
북괴는 이러한 풍토와 기류에 편승해서「하노이」방식에 따라 주한미군의 존재와 한국의 친미정부가 마치 남-북 대화와 공존의 장애물인 것처럼 거짓 선전하고 그 반사효과로써 한·미 동맹관계의 약화와 한국의 고립화를 얻어내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일단 한-미 방위조약의 실효성이 희박해지는 날에는「남한혁명」지원의 명목을 붙여 현상타파에 개입하겠다는 것이다.
작금의 인지사태와 재3세계의 영향력으로써 북괴는 일단「아시아」민족주의를 발판으로 국제적인 반미 통일전선을 이 시기에 유효 적절하게 이용할 수 있다고 판단한 듯 하다. 나아가 아랍」민족주의와 중남미 민족주의의 반미적 요소도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그래서 자기들도 역시 공산주의에 앞서 제3세계와 비동맹「그룹」의 일원인 양 열심히 가장하여 초청외교와 방문외교를 통해「이미지」조작에 나서고 있다.
호지명이 시종 월남민족주의를 가장해 재미를 본 경험을 뒤늦게라도 원용하겠다는 것이다.

<역 통일 전선 전략으로 대처>
때문에 북괴에 남은 문제는 그와 같은 민족주의 가장행렬을 어떻게 하면 한반도에도 대내적으로 먹혀 들어가게 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 기만 극을 위해 북괴가 늘 써먹고 있는 단순논리가 바로「지금 당 장의 무조건 통일」이란 비현실적이면서도 황당한 민족감정 악용 법이다.
한국 민의 전통적인 민족주의 감정을 발판으로 이른바 각계각층 국민들을 반미로 몰아가서 묶어 보려는 의도이다. 일단 반미로 흘러간 민족감정은 곧 현상타파, 즉「인민민주주의혁명」으로 되게 마련이라는 것이 북괴의 기대이자 계략인 것이다.
때문에 결론은 간단하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공산주의자를 고립시키는「역 통일전선」전략을 국내·국외적으로 벌이는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이 우리를 고립시키기에 앞서 우리가 공산주의자를 고립시키기 위해 앞질러 반공진영이 단합·단결하는 것이다. 민족주의와 민족사의 올바른 정통성을 반공진영이 선취하여 악용 당할 소지를 없애고 그 국민적 단합의 토대 위에 완벽한 군사적 억지 력과 동맹관계를 강화하고 합리적인 긴장완화의 처방을 계속 세계여론에 제시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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