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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형주택 투자자 '나 어떡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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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이모(36·동작구)씨는 요즘 밤잠을 설친다. 2년 전 소형주택 2가구를 사서 임대했는데 월세 소득을 신고하지 않아 왔다. 생각보다 임대수익률이 낮아 세금까지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달 26일 나온 ‘주택임대차 선진화방안’에 따라 세입자가 월세 소득공제 신청을 하면 이씨는 꼼짝없이 소득세를 물어야 한다. 이씨는 “소형주택이 크게 늘면서 빈 방이 늘고 임대료도 떨어지고 있다”며 “월세 소득세까지 내면 사실상 남는 게 없어 처분할까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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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형생활주택과 주거용 오피스텔 등 소형주택 투자자들이 울상이다. 기대만큼 임대수익은 나오지 않는데 앞으로 적지 않은 세금까지 내게 생겼다. 내다 팔고 싶어도 소형주택이 급증하면서 값이 떨어져 쉽지 않다.

 소형주택은 매달 임대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3~4년 전부터 투자 열풍이 불었다. 상가·아파트보다 싸 소액 투자가 가능한 데다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20~30대 젊은 직장인은 물론 은퇴 준비를 앞둔 중·장년층까지 은행 대출을 끼고 투자 대열에 뛰어들었다. 실제 2011년 수원 광교신도시에서 분양한 푸르지오시티 오피스텔은 계약자의 50.6%가 30~40대였다. 비슷한 시기에 분양한 서울 이대역 푸르지오시티 역시 30~40대가 계약자의 절반을 차지했다. 제2의 월급을 꿈꾸며 대출을 받아 투자에 나선 것이다.

 이처럼 소형주택 1~2가구를 매입해 임대하는 투자자 대부분은 임대소득 신고를 하지 않는다. 부동산중개업계와 세무사들은 업무용 오피스텔을 제외한 소형주택 투자자 거의 대부분이 임대소득 신고를 하지 않는 것으로 추정한다. 대개 직장 등 다른 소득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의 주택임대차 선진화 방안이 시행되면 세금 걱정을 해야 한다. 예컨대 인터넷 보안회사에 근무하는 이씨는 그간 연봉 4500만원에 대한 소득세(378만원)만 납부했지만, 소형주택 2가구에 대한 월세(연 1320만원)에 대한 소득세까지 물면 소득세가 총 470여만원으로 불어난다(그래픽 참고).

 그렇다고 집을 처분하기엔 시장 상황이 좋지 않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고 1~2인 가구 증가가 맞물리면서 소형 주택 공급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때문이다. 올해 전국에서 신규 입주하는 오피스텔은 지난해보다 1.5배 많은 4만5462실로, 최근 6년 새 가장 많다(부동산114조사). 도시형생활주택은 지난해 6만9000여 가구가 인허가를 받았다(국토부 조사). 도시형생활주택은 보통 인허가부터 입주까지 6개월에서 1년 정도가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최소 4만 가구가 추가로 입주한다는 얘기가 된다. 공급이 급격히 늘면서 임대료는 계속 내리고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국 오피스텔 임대수익률(이하 세전)은 평균 연 5.88%로 5년째 내리막을 탔다. 매매가가 높은 서울은 평균 연 5.43%까지 떨어졌다. 도시형생활주택은 이보다 더하다. FR인베스트먼트가 지난해 말 서울 도시형생활주택 6만8620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임대수익률은 평균 연 4.29%에 그쳤다. 값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태다. 새로 입주하는 소형주택은 분양가보다 2000만~3000만원 싼 매물이 수두룩하고, 경매시장에선 찬밥신세가 된 지 오래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서울 도시형생활주택 경매 건수는 22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약 70% 급증했다. 반면에 낙찰가율(낙찰가를 감정가로 나눈 비율)은 74%로 전분기보다 14%포인트 이상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월세 소득공제가 본격 시행되면 소형주택 대란이 벌어질 가능성을 우려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장전문가는 “세금 등을 제한 실질 임대수익률이 연 3%대인 점을 감안하면 일부는 월세를 전세로 바꾸고, 일부는 매각에 나서 매매가격이 급락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소형주택의 공급 과잉은 사실 정부가 부추긴 측면이 크다. 급등하는 아파트 전셋값을 잡겠다며 2009년 도시형생활주택을 도입하고, 2010년엔 오피스텔 바닥난방을 전면 허용하는 등 소형주택 공급에 앞장섰다. 정부 정책을 믿고 투자했는데 남는 건 손실뿐이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황정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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