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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식민지자료 조선 편』-자료 재 출판 싸고 일 정부·출판사 법정시비 3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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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동경=박동순 특파원】한국을 비롯, 대만 「사할린」·중국·남태평양제도 등 구 식민지역에서의 일본인의 활동상황을 해방직후인 47년 말 일본대장성이 주관, 집대성한 11편 37권의 방대한 정부자료출판을 싸고 일본정부와 한 출판사간에 3년째 법정투쟁이 계속되고 있음이 밝혀졌다. 문제된 자료는 『일본인의 해외활동에 관한 역사적 조사』(대장성관리국). 패전 시를 기준으로 그때까지의 활동의 역사를 경제학적 견지에서 조사 기록한 이 자료가운데 그 극비-「취급주의」 도장이 찍힌 9권 「조선 편」으로 「식민지조선」의 산업·무역·금융·교통·통신실태를 비롯, 조선통치의 최고방침과 경찰·사법·교육·문화·산업정책, 그리고 부록으로 조선통치의 성격과 실적, 독립조선경제의 장래에 관한 분석까지도 시도하고 있으며 자료작성 의도는 『대상문제 등에 대비키 위한 것』(머리말) 이었다.
주목할 것은 이 조사 보고서를 관류하는바 한국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려는 사고방식.
조선 편 부록 「조선통치의 성격과 실태」에서는 『일본의 조선통치가 제국주의적 지배와 착취로 시종했다는 견해가 지배적인 것은 유감』이라는 서두로 시작, 『일본의 조선통치가 조선인을 노예적으로 착취하고 그 행복을 유린했다는 논고에는 정당한 항변의 여지가 있다』를 지적하고 『이상으로서는 이른바 식민지 지배를 지향한 것이 아니었다』고 주장하고있다.
이러한 기본인식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 자료는 『창씨개명제도의 진보적 성격』을 강조하고 『한·일 합병은 국방상 필요 때문이며 당시의 일본 자본주의로서는 조선이라는 새 영토경영은 무거운 짐이었다』고 분석하는가하면 『조선경제가 비참한 상태에서 합병 후 불과 30여 년에 지금과 같은 일대발전을 이룩한 것은 일본의 지도결과였다』고 과시하고 있다.
또한 ▲토지개혁으로 구태의연한 조선경제는 근대화에의 기초를 가다듬었고 ▲『조선인의 배고픔이란 희생 밑에 일본이 조선의 쌀을 수탈했다고 간단히 단죄해서는 안 된다』고 항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조선경제의 향상」이라는 제하의 합병당시와 패전시의 경제상태를 비교 분석하는가 하면 ▲배급의 차별이 있었다면 그것은 내지·선인의 풍속, 습관의 차이 때문이다 ▲전등·수도·철도 및 도로·「킬로」수·선박·전신전화 등 경제적 시설의 대부분은 1백억「엥」을 넘는 일본의 투자에 의존한 것이라 주장했고, 심지어 ▲한국의 독립에 따른 이익과 불이익까지도 분석하고 있다.
또한 이 자료는 「전체서문」에서 『일본인의 재외재산은 침략·약탈로만 처리될 수 없는 다년간의 정상적 경제활동의 성과였다』, 즉 『일본 및 일본인의 재외재산의 생성과정은 제국주의적 발전사도, 국가 혹은 민족의 침략사도 아닌 일본인 고유의 경제행위, 상거래이며 문화활동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동시에 『조선 편 총괄』에서는 일본의 조선통치가 치졸했음을 인정하면서도 일본의 힘으로 후진·낙오한 조선인의 생활과 문화를 드높인 성과를 평가하고 이른바 「동화정책」은 「식민지체제」를 지양하려는 혁신적 민주적 성격을 지닌 것이라 강조하고 있다.
때문에 이 자료는 그 작성의도 및 내용으로 미루어 한일회담 당시에 「구보전망언」과 작년 초의 「전중망언」의 원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서 아직까지 일본 안에 뿌리깊은 한국병합 옹호긍정론을 전형적으로 대변해 주는 것이다.
자료 집필자는 「식민지」에서 귀국한 2백여명(명단공표를 대장성이 거부)이며 인쇄 부수는 2백부, 이 가운데 몇 부만이 지금까지 남아있고 한정 된 사람들만이 이를 이용할 수 있었을 뿐이다.
문제의 재판은 「용계서사」를 걸어 이 자료를 사진만으로 복사, 출판하려는데 대해 정부가 제작권을 이유로 제소, 가처분 결정에 의해 출판을 중단시킨 때문이며 현재 「하다다·다까지」(기전외) 「다까미·모도이」(왕성소) 등 수 십 명의 저명인사들이 출판지원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일본정부는 자료가 정부견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내용공표를 꺼릴 이유는 없다고 강조, 저작권 문제를 표면에 내세우고있으나 「내용의 편언·척구」가 인용됨으로써 『일본의 식민지 정책 전반이 내외에서 비판당하면 곤란하다』는 점을 대장성당국자가 공판정에서 실토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정부는 지금까지도 한국인 강제 징용자 및 위안부실태, 한국에서 반출해 낸 문화재 등록 등 방대한 비밀자료들을 숨겨놓고 있다고 관계전문가들은 주장하고 있는 만큼 이 재판의 추이는 이러한 「구 식민지관계자료」 공개운동의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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