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값의 반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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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모든 물가의 앙등 추세에도 불구하고 쌀값만은 지역에 따라 심한 기복을 나타내고 있는 가운데 서울 지역은 다시 내림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 같은 서울 지방 쌀값 하락은 언뜻 보아서는 농촌의 학자금 수요에 따른 공급증대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으나 물가의 전반적인 상승추세와 엇갈리는 이 같은 추세는 분명히 정상일 수 없는 문제점을 제기하는 것이다.
15일의 경우, 서울에 반입된 일반 미 도매시세가 상품 가마당 경기미 1만7천2백원, 호남 미 1만6천6백원이라는 것은 한달 전 시세보다 평균 8백원 내지 1천원씩이나 폭락한 것으로 그나마 매기도 별로 없어 체화 량이 작년의 20배에 가까운 6만여 가마에 이르고 있음은 이를 말해 준다.
소비지 쌀값이 떨어진다면 소비자들로서는 일단 바람직한 일일 수도 있으나 최근의 이례적인 쌀값 추이는 몇 가지 관심 깊게 관찰해야 할 요인을 안고 있다.
우선 지난해의 12·7조치와 정부의 이른바 물가체계 개편작업, 그리고 양곡소비 절약의 강화에도 불구하고 쌀값이 연말의 최성출회기를 거쳐 새봄의 신학기에 이르도록 계속 강세를 보여 왔던 사실에 비추어 최근의 가격변동은 극히 이례적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연초 이내 만연되어 온「인플레·무드」를 그대로 반영해 온 쌀값은 입학「시즌」인 2월말까지도 강세를 그대로 유지해 왔고 특히 지난2월부터 곡가 조절용 정부미 방출이 줄어들자 지역에 따라서는 최고 2천 원이나 뛰는가 하면, 일부 중소도시에서는 대도시에서 유입되는 혼합 곡과 9분도 쌀의 암거래까지 성행되었던 것을 고려할 때, 대도시 쌀값 하락세는 단순히 일시적인 반작용으로 그칠 가능성도 물론 전혀 없지는 않다.
적어도 공급측면에서 볼 때 올해의 사정이 매우 낙관적이라는 것만은 틀림없다. 정부통계가 정확한 것이라면 우선 풍작에 따른 농가 재고량이 많고, 값싼 혼합 곡이 연중대량 방출되고 있으며, 특히 쌀 소비절약 강화조치로 일반의 가수요가 연초에 집중됨으로써 도시 소비자의 수요가 크게 줄어든 점도 조만간 쌀값이 고개를 숙일 것이라는 전망을 가능케 했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같은 소강시세가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가 중요하다.
앞으로의 쌀값 추세는 물량 확보와는 상관없이 일반물가가 얼마나 더 오를 것인가에 달려 있다 하겠으며, 또 정부의 당면과제인 이른바 곡가 현실 화 방침이 어느 선에서 결정될 것인가에 달려 있다.
정부로서는 물가 개편 작업을 늦어도 3월말까지는 마무리짓고, 총 수요 억제정책을 지속함으로써 올해 물가상승률을 20%선에서 안정시킬 계획이다. 그러나 설사 계획대로 이 같은 목표가 이루어지더라도 쌀값은 그 때문에 상당한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보다도 큰 관심사는 정부가 벌써 여러 차례 그 불가피성을 강조해 온 곡 가 현실화가 언제 어느 폭만큼 실현되는가에 있는 것 같다.
정부의 현재 재정형편으로는 쌀 2백63억 원, 보리쌀 4백51억 원, 밀가루 5백48억원 등 지난 연말 현재 이미 1천2백70억 원에 이르는 양곡관리기금의 적자를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운 점에 비추어 곡 가 체계의 재조정을 통한 기금운용의 개선은 시급하다 하겠다.
다만 정부가 내걸고 있는 양곡소비절약정책이 최대한의 효과를 얻을 수 있고, 여타 물가에의 영향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도록 그 시기와 양곡별 가격차 유지에 세심한 배려가 필요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지금까지와 같은 소극적인 농업. 정책운영을 벗어나 곡가 정책의 핵심이 주곡생산 중심으로의 획기적인 농업생산체계를 이룩하기에 충분할 만큼 과감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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