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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억 들여 놓고 '애물단지'로 … 주민 반대 부딪혀 조성조차 못 하는 곳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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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아산지역 산업단지에 들어섰거나 조성 예정인 폐기물 매립장이 세금 먹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한 곳에선 400억원의 예산을 들여 갖춰 놓고 쓸모가 없어 방치하고, 또 다른 곳은 주민 반대에 부닥쳐 조성조차 못 하고 있다. 폐기물 발생 예측이 어렵고 산업단지 규모에 따라 폐기물 매립장을 의무적으로 갖춰야 하는 법도 문제지만 지방자치단체의 주민 설득 노력도 부족해서 빚어진 사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천안·아산지역 산업단지 폐기물 매립장의 현황과 문제점을 짚었다.

아산의 인주일반산업단지에는 국비를 포함해 수백 억원을 들여 조성한 환경기초시설이 있다. 하지만 수년째 가동을 못 하고 방치돼 있다. 관리도 제대로 안 돼 시설이 급속히 낡아가고 있지만 행정당국은 손을 놓고 있다.

 아산시는 2007년 인주일반단지에 사업비 439억원으로 환경기초시설을 만들었다. 폐수종말처리장 264억원. 소각장 126억원, 매립장 46억원의 예산이 들어갔다. 국비 264억원과 입주 기업들이 부담한 176억원으로 충당했다. 하지만 완공 후 7년이 지난 지금도 소각장과 매립장은 가동조차 못 하고 있다.

 25일 현장에 가 보니 1만 8834㎡ 면적의 매립장은 텅 비었다. 하루 30t을 처리할 수 있는 소각장 역시 2006년 시험가동 후 빈 건물만 우뚝 서 있다. 두 시설 모두 들어오는 폐기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가동을 위해서는 하루 20t 이상의 폐기물이 반입돼야 하는데 이곳 산업단지에선 하루 폐기물 발생량이 6~7t에 불과하다.

1 아산 인주산단 소각장 내부시설 모습.

폐기물 발생량 적어 가동중단 … 시설 노후 심각해도 ‘나 몰라라’

소각장 건물은 겉으로 보기에도 노후화가 심각했다.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의 철근 콘크리트가 급속히 부식되고 있었다. 실내에는 철골 기둥의 페인트가 벗겨지거나 바닥에 떨어져 있고 배관과 모터도 벌겋게 녹슬었다. 그나마 폐수종말처리장이 가동되고 있지만 이마저도 처리 용량의 12%에 그쳐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 하루 처리 용량이 6000t에 달하지만 반입량은 720t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인주산업단지가 썰렁한 게 아니다. 산업단지 분양율은 100%로 32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 그러나 폐기물 발생량이 적어 소각장과 매립장 가동 중단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조성 당시부터 산업단지 안에서 발생하는 폐기물만 처리할 수 있도록 해 폐기물을 외부에서 반입할 수도 없다. 아산시가 무용지물이 된 소각장과 매립장의 활용 방안을 찾기 위해 2012년 3500만원을 들여 용역을 실시했지만 소각장과 매립장을 폐기해야 된다는 결론만 나왔다.

천안의 경우 제5산업단지에 기업이 속속 들어서고 있는 가운데 의무적으로 폐기물 매립장을 조성해야 하지만 손을 놓고 있다. 민간사업자가 폐기물 매립장 조성에 나섰다가 주민들의 반대에 부닥쳤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천안시가 폐기물 매립장 면적을 늘린 데다 매립 용량을 많이 잡았다는 게 반대 이유다. 3만9669㎡ 면적에 최소 10년 이상 매립할 수 있고 매립 용량은 200만㎥에 이른다. 산업단지 내에서 발생하는 폐기물량은 연간 2만6616t에 그친다.

2 폐기물 매립장과 뒤로 보이는 소각장 외경. 3 폐기물을 수집·운반하는 적재함. 프리랜서 진수학

면적과 매립 용량을 많이 늘린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산업단지에서만 나오는 폐기물을 처리하면 민간사업자에게는 수익성이 없다. 그렇다고 시가 같은 규모로 직접 매립시설을 설치하면 400억원 이상 소요되는 예산을 충당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시는 이 같은 이유를 들어 지난해 4월 매립장을 광역화하기 위해 충남도로부터 산업단지 지정 및 실시계획 변경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사업계획이 주민들의 극심한 반대에 부닥치자 시는 주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외부 폐기물을 반입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결국 사업을 추진하는 사업체만 피해를 보게 됐다. 업체는 더 이상 사업 추진이 불투명해지자 천안시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한 뒤 다시 항소한 상태다.

일정 규모의 산업단지를 조성할 때 의무적으로 매립장과 같은 환경기초시설을 설치해야 한다는 관련법이 가장 큰 원인이다. 향후 예상되는 매립용량에 대한 예측 없이 산업단지 면적만으로 시설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 2006년 개정된 ‘폐기물처리시설 설치촉진 및 주변지역지원 등에 관한 법률’에는 연간 폐기물 발생량 2만t 이상이고 조성면적이 50만㎡ 넘는 산업단지에는 폐기물 처리시설을 설치하도록 규정(시행령)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기업이 입주해 얼마만큼의 폐기물이 나올지 연간 폐기물 예측이 어려운 게 현실이다. 예측이 빗나가면 면적으로만 폐기물 시설을 설치해야 한다는 점도 문제다. 행정당국이 폐기물 시설 설치계획에 앞서 산업단지 주변 주민들을 지속적으로 접촉해 설득하고 다양한 각도로 지원하기 위한 노력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있다.

환경시설 전문가인 김광선 한기대 메카트로닉스 공학부 교수는 “산업이 발달하면서 환경분야의 중요성과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특히 산업단지를 조성하면서 갖추게 되는 폐기물 매립장 등 환경처리시설에 대한 수학적이고 과학적인 예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산 인주산업단지가 잘못된 예측이 불러온 하나의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천안 제5산업단지의 경우 행정당국은 법적으로 갖춰야 할 시설이면 친환경적으로 얼마든지 조성할 수 있고 주민들에게도 다양한 지원이 이뤄진다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적극적으로 주민들을 설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글=강태우 기자, 사진=프리랜서 진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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