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원에 불…영아 14명 소사|수유동 십자군연맹부설「천사의 집」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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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12일 상오 8시7분쯤 서울 도봉구 수유1동52의32 한국십자군연맹부설 영아보육원 천사의 집(원장 백영숙·53·여)2층3호 육아 실에서 불이나 3호실과 1호실에 있던 생후1일∼1개월11일 된 갓난애 14명(여아 4명)이 불타 죽고 생후 9일된 박현주 양이 중상을 입었으며 목조2층 30평을 모두 태웠다. 이 영아원에는 원장 백씨와 보모 나선애씨(27)등 모두 15명의 직원이 있었으나 화재 당시 모두 1층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고 소방차출동이 늦은데다 영아들이 제 힘으로 불을 피할 수 없어 질식, 희생자가 많았다.
화재당시 2층2호실에 있던 영아 7명과 아래층에 있던 영아 29명 등 나머지 아기 36명은 보육원직원·인근주민 몇 소방관 등에 의해 구출됐다.
경찰은 3호실 보모 나 양으로부터 아기들에게 우유를 먹이기 위해 상오7시쯤 전기난로를「소키트」에 꽂아 놓고 있다가 상오8시10분쯤 아래층으로 식사하러 내려갔으며 난로는 방 중앙「스펀지·매트리스」와 이불이 놓인 빈 침대 옆에 바짝 붙여져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 내고 화인을 난로과열로 보고 원장 백씨, 보모 나씨, 1호실 보모 홍영희씨(23), 2호실 보모 김영순씨(32)등 4명을 중실 화 및 업무상과실치사 상 협의로 입건했다.

<장난감도 한데 엉겨>
▲사고현장=길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는 갓난 천사들은 어른들이 뉘어 놓은 자세 그대로 화마의 제물이 됐다.
불에 탄 1호실에 수용됐던 키50㎝미만의 2주 짜리 젖먹이 7명은「ㄱ」자로 편 요 위에 이불을 덮은 채 발버둥 한번 친 흔적도 없이 시꺼먼 숯 덩이가 돼 있었고 2주 이상 수용된 3호실의 어린이들은 책상 위의 철 바구니 안에서 두 손을 웅크린 채 처참한 모습.
1호실의 아기 중엔 아직 탯 자국 치료중인 애들도 있어 약병 등 이 시꺼멓게 흩어져 있었고 엄마 젖 대신 빨았던「플라스틱」젖병을 비롯, 각종 불탄 장난감이 시체 옆에 뒤엉켜 있었다.
3호실에서 난 불은 목재 내장재에 옮겨 붙으면서 마루를 건너 2층 전체를 순식간에 삼켜 마침 아래층 응접실에서 식사를 하다 말고 손님을 맞고 있던 원장 백영숙씨가『아기, 아기』하고 소리치며 2층에 올라가려 했으나 이미 불길은 계단까지 번져 있었다.

<이웃들도 구조합세>
▲구조=화재당시 보모 7명, 세탁부 2명, 우 유방 직원 2명, 식당직윈 1명, 의무실 직원 2명이 아래층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세탁부 박을순씨(51)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중『사람 살려라』는 비명소리를 듣고 이미 연기가 자욱한 아래층으로 뛰어들어 영아 12명을 세 번에 걸쳐 집 앞뜰에 있는 격리실로 긴급대피 시켰다.
또 김영순씨(35)는 식사하던 도중 2층에서『엥』『엥』하고 찢어질 듯이 울어대는 아기 울음소리를 듣고 뛰어들어 영아 3명씩을 품에 안고 뛰어나왔다.
불이 나자 앞집의 배홍식씨(24·도봉구 수유1동52의60)와 정기영씨(28)등 10여명은 5m의 담에 올라가 망치로 2층 쇠 창문을 부수고 들어가 영아 6명을「릴레이」식으로 구출하기도 했다. 주민들은 불이 난 후 30분 후에야 출동한 소방차가 좀더 일찍 왔더라도 더 구할 수 있었을 텐데 하며 아쉬워했다.
구출된 영아들은 이웃 주민들이 한 가구에 2∼3명씩 나누어 보호하다 약 2시간 뒤인 이날상오10쯤 경찰에 의해 불광동 선덕원으로 옮겨졌다.
한편 백 원장은 화재현장에서 영아들을 구해 내다 얼굴과 손등에 화상을 입고 인근 서울외과에 입원했다.
사망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김미성(3월7일생) ▲민성남(3월8일생) ▲고재호(3월9일생)▲심철호(3윌2일생) ▲임경애(3월7일생) ▲임영주(3월10일생)▲장승훈(3월11일생) ▲이영진(2월14일생) ▲서근배(2월17일생) ▲심은경(2월3일생) ▲박광태(2월12일생) ▲이석우(2월26일생)▲유경석(3월1일생)▲성은희(2월26일생)

<십자군연맹서 운영 보모들 자원봉사 제>
▲천사의 집=한국십자군연맹(서울 중구 태평로60의17 태성「빌딩」205호실·대표 김대식)산하 영아원으로서 기아나 미혼모가 낳은 어린이를 수용, 7세까지 양육 후 국내의 무 자녀 가족에 입양 알선한다. 현재 1∼5세까지의 51명의 영아가 7명의 보모 등 16명의 직원 밑에 보육되고 있다.
보모들은 전국 각 교회단체에서 자원해 봉사하고 있으며 보통 6개월∼1년간 이곳에서 숙식을 제공받으며 어린이들과 생활한다.
한 명의 보모는 영아 7∼8명을 맡아 새벽3시부터 3시간 간격으로 밤9시까지 우유를 먹이고 있다.
이곳에서 7세까지 자란 어린이들은 십자군의 주선으로 외국인, 또는 내국인에 입양되거나 고아원에 보내진다. 한국십자군연맹은 사회봉사단체인 국제십자군연맹의 지부로 영아 1인당 월4만원씩 지원을 받아 현재 전국에 24개의 영아 및 육아원을 설치, 73년에 27명. 74년에 1백84명을 미국에 입양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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