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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허 외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신학기를 맞아 근 5개월만에 교단에 섰다. 소란했던 지난 한 해를 뒤돌아 볼 때 착잡한 마음 금할 수 없다. 그러나 신입생들의 밝고도 희망찬 표정을 보니 그래도 마음이 흐뭇하다. 이런 저런 욕심은 다 그만두고 그 중 한가지 이들에게만은 장차「내허외식」의 풍조에나마 물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바로 얼마 전 필자가 잘 아는 A군은 X대 Y과를 졸업하였다. 그는 초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시골에서 살았다. 소위 일류 중학에 진학하기 위해 온 가족이 서울로 이사했다.
서울 모 중학에 입학한 후 그의 양친은 생활비를 최대한 절약하면서 그에게 가정교사를 모셔다가 아들공부에만 전념하였다. 부모의 극성으로 그의 성적은 눈에 띄게 올라갔다.
그러나 고등학교 입학시험에서는 의외로 낙방의 고배를 맛보게 되어 온 가족을 실망시킨 일도 있었다.
2차로 모 고등학교에 진학한 그에게는 대학입시란 마지막 관문이 남아 있었다. 숨도 들이킬 사이 없이「그룹」제 과외공부다, 학관공부다 하면서 사방으로 뛰었다. 그의 어머니도 같이 뛰었다. 그러다 보니 남달리 고왔던 어머니의 얼굴에는 주름이 깊어갔다.
아버지는 힘에 겨운 경제적 부담으로 빚까지 지게되었다. 게다가 본인은 본인대로 불면증과 소화불량증이란 고질까지 얻게 되었다. 그의 양친은 재수생의 신세를 면한 것만도 다행으로 생각하였다. 원래 Y학과를 택한 것도 본인의 소질이나 장래의 희망에서가 아니라 그저 들어가고 보자는 데서였다.
그는 옆에 가정교사가 붙어 있어야만 했고, 독자적으로 공부할 능력이 퇴화된 학생이란 표현이 타당하리라. 그래서 대학과정의 성적은 점차 하락하여 갔다. 심신이 지쳤던 것이다. 그는 3학년이 되자 군에 입대했고 3년 후 제대하여 복교했다. 동급생들은 이미 졸업했고 그 중 몇 명의 친구들은 대학원에 진학하여 조교가 된 이도 있었다. 때로는 교수대신 친구인조교의 감독도 받았고 그로 하여 아니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그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평소결강도 심심찮게 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학과대항 또는 대학대항 친선운동시합이 있을 때는 한번도 빠져본 일이 없었다. 공부라고는 시험 전날 밤을 새우는 것이 전부였다. 그는 시국관에 있어서도 격렬한 비평 자이었다. 취하면 입버릇처럼 장기집권이니, 부조리니, 부정이니 하며 곧잘 열을 올렸다. 성적은 평균 C학점을 넘지 않았다. 작년 봄 학기 쥐꼬리만한 장학금을 타는데 성공하였다.
그 돈은 친구들과 마신 술값에 쓰이고 말았다. 상급학년이 된 후 학교 교복은 입지 않았고「넥타이」·양말은 차차 아버지 것을 실례하게 되었고 양복은 아버지의 헌 옷을 물려 입다가 작년 가을에는 어머니의 계돈으로 한 벌 맞추어 입었다.
학창시절은 그런 대로 바쁜 나날이었다. 작년 가을부터는 거의 매일 친구들과 어울렸다.
당구는 3백 점, 바둑은 2급 강이었다. 지난 학기에는 방학 아닌 방학에서「법정수업일수」를 채우고 졸업장을 받았다. 졸업식에도 많은 친지와 친구들로부터 축하의 꽃다발을 한아름이나 받았다. 그러나 필자는 그에 대한 형설의 공을 치하하기에 앞서 측은한 마음이 앞서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학원 뿐 아니라 도처에 자생해야 할 일이 허다하게 깔려있음을 안다. 그 중에서도「내허외식」으로 기울어져가고 있는 사회풍조도 우리의 관심을 쏟아야 할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몇 년 전에도「매스컴」을 시끄럽게 한 일이 있었지만 요사이 다시 금괴와 고급시계 밀수사건으로 신문지면을 채우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이는 우리 국민의 일부가 가진「내허외식」의 욕구 심을 충족시켜 주기 위한 타기 해야 할 사회적부조리현상이 아니고 무엇인가. 법이나 다른 어떠한 무리한 방법으로 이와 같은 사회적 병폐(이를테면 내허외식과 같은)를 막을 수 있다고는 누구도 믿지 않는다. 그것은 어려서부터 올바른 교육에 의해 고쳐나가는 것이 순리가 아닌가 생각한다.
올해도 신입생들은 입학하였다. 그들의 선배가 저지른 전철을 다시 밟지 않도록 교육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는 극히 작은 문제 같지만 먼 장래를 내다 볼 때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임정대<연세대교수·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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