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주교단 메시지-전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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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974년7월23일부터 영어의 몸이 되셨던 원주교구 지학순 주교님이 지난 2월15일에 대법원의 구속정지로 자유의 몸이 되셔서 다시 우리교회 공동체에 돌아오시고 함께 구속되었던 많은 인사들이 석방된데 대하여 우리 주교단은 모든 성직자·수도자·평 신자들과 함께 진심으로 기뻐합니다.
교회는 항상 고통받는 이들과 더불어 그 고통을 나누며 인간의 기본권을 옹호하여 왔습니다. 한국교회도 그동안 지 주교님을 비롯하여 함께 구속된 학생·교수 및 일반인사들의 고통을 나누며 그들의 기본권보장을 호소했던 것입니다. 동시에 온 교회가 구속 자들의 석방과 인권보장을 위해서 전능하시고 인자하신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하였습니다.
이제 정부가 비상조치법을 폐지하고 구속 인사들을 석방하고 폭넓은 대화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 기회에 교회도 교회 나름대로 그동안의 행동을 반성하고 앞으로 유사한 사태에 대처할 자세를 정립함으로써 교회 안의 일치를 도모하고 외부로부터의 오해를 제거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어 몇 가지 행동지침을 제시하는 바입니다.
1, 고통받는 이들과 인권보장과 사학경의 구현을 위하여 우리는 계속 열심히 기도해야겠습니다, 기도는 복음 적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이웃을 비난하거나 고발하는 기도가 되어서는 안 되겠고 오직 스스로의 가슴을 치며 감히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는 겸손된 기도의 모습을 견지해야 하겠습니다.
2, 부정부패·사회부조리·인권유린 등을 고발하는 교회의 발언권은 계속 행사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정치질서에 대한 윤리적 판단을 내려야 합니다. 이런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교황청과 각국 주교회의 안에 정의 평화위원회가 조직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직자·수도자·평 신자들은 이 공식기구에 가입하여 교회의 가르침에 입각하여 정치활동과 엄격히 구별되는 교회고유의 사명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3, 고통받은 형제들을 도와주며 사회질서를 개선하는 교회의 사명수행은 모든 선의의 사람들과 제휴하여 최대의 효과를 거두어야 하겠으나 정치질서나 정치분야에 관한 윤리적 판단을 내리고 그에 따른 구체적 행동에 있어서는 외부의 정치세력과 제휴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교회가 정치문제에 관하여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모두 정치세력에 관계되는 것이며 정권의 형태나 지역과 시대에 구애받지 않는 불변의 진리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언제나 모든 정치세력에서 초연한 입장에 서 있어야 합니다.
4, 다수 정치단체가 허용되는 지역에 있어서 신자 각자는 자기양심에 따라 어떤 정치단체든지 자유로이 선택하여 시민의 자격으로 정치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공식기구로서는 평신자 단체도 특정 정치단체에 가입하지 못합니다.
이상 지침을 준수함으로써 일치된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며 교회 고유의 사명인 인간구원에 헌신하는 한편 현세질서에도 복음정신을 침투시켜 국가와 민족의 진정한 행복을 도모해야 하겠습니다.
화해의 성년을 맞이하여 교황 성하의 소망대로 한국 주교단도 모든 석방인사들과 억울한 미 석방자들의 사면을 희망하며 정치적 견해의 차이와 시국관의 차이에서 생기는 정부와 국민의 상호신뢰를 회복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는 바입니다. 1975년2월28일 춘계총회를 마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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