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유치원 다니는 가을이는 누구? 우리집 강아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19면

“오늘 가을이가 유난히 신이 나서 유치원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잘 놀았어요. 밥도 잘 먹었고요. 그런데 약간 짙은 변을 봤어요. 식사량을 조금 줄여주세요.”

유치원 선생님이 아이 부모에게 쓴 알림장 내용일까. 아니다. 반려동물 전문 브랜드 이리온이 운영하는 애견 유치원 ‘선생님’이 견주(犬主)에게 보낸 알림장이다. 그렇다. 가을이는 말티즈. 그러니까 개다. 개 앞으로 알림장이라니. 아니, 유치원이라니.

가을이는 이 유치원의 주5일반 ‘학생’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다닌다(하루 교육비 4만원). 다른 20여마리의 강아지와 어울리며 사회성 교육을 받는 거다. 장난감을 이용한 지능개발 놀이로 두뇌회전 훈련도 받고 이곳 수의사에게 수시로 건강검사도 받는다.

국내 애견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프리미엄화하고 있다. 사료와 의류는 물론 서비스까지 최고급이다. 특히 의료서비스는 사람 못지 않다. 이리온 동물병원에서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줄기세포시술을 한다. 자가줄기세포를 배양해 투여하는 이 시술은 200여만원의 고가지만 관절염이나 척수손상·당뇨 등의 치료에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찾는 고객이 많다.

김주미 이리온 용품 MD는 “지난해 8월부터 시술을 하고 있다”며 “고객 5~7%정도는 이 시술을 받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고 말했다.

개포동 이안동물영상의학센터는 2005년 국내 최초로 동물 전용 MRI장비를 도입했다. 지금은 전국에 10여곳이 갖추고 있다. 이밖에 수십만원대의 건강검진·치아교정·비만클리닉·요가 등은 여느 동물병원에서나 쉽게 받을 수 있는 서비스다.

애견 장례서비스도 운구·입관·화장·납골당 안치까지 사람과 똑같은 절차로 해준다. 지난해엔 강릉시에 애견전용해수욕장까지 생겼다. 1만 마리 가까운 개가 주인과 함께 해수욕장을 다녀갔다.

애견 관련 프리미엄 시장의 대표상품은 뭐니뭐니해도 사료와 의류다.

한국펫사료협회 제형진 과장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애완동물 시장에서도 요즘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며 “3~4년 전부터 유기농 재료나 고급 고기, 영양제가 든 사료 등을 찾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저렴한 사료와 비교해 20~30배 비싸도 이것만 사는 사람도 꽤 된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애완용품 명품브랜드 ‘포펫츠온리’나 이리온이 수입하는 영국의 ‘멍고앤머드’, 일본의 ‘프리스티치’는 유기농 원단이나 고급 캐시미어 원단을 이용한 스웨터 하나에 10만원, 방석 하나에 20만원 넘게 받는다. 최근엔 자동브레이크가 장착된 유모차 등도 주목받고 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긍정과 우려의 시선이 동시에 있다.

박애경 한국애견협회 사무총장은 “좋은 제품을 쓰고 좋은 먹이를 먹이면 애완동물 건강이 확실히 좋아진다”며 “애견 뿐 아니라 관련 인력이 수요가 늘어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는 장점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려동물을 과시용 소품처럼 이용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김현미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자식에게 과도한 투자를 하며 아이 삶을 주무르는 부모가 꼭 좋은 게 아닌 것처럼 그런 행동이 동물 복지를 반드시 증진시킨다고 보기 어렵다”며 “동물 습성이나 생리를 고려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의인화하는 게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심영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