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도에 미술관 건립|교포화가 전화황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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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동경=박동순 특파원】일본「교오또」에 혼자 힘으로 미술관 두개를 세운 한국인이 있다. 미술관이라지 만 거창한 건물은 아니고「아틀리에」곁에 마련된 조촐한 전시실. 거기에 전시된 약 90점의 자기 유화와 취미 삼아 만들어 구워낸 도기 30여 점이 그 전부다. 그러나 이 미술관을 세우기 위해 손수 기둥을 깎고 다듬으며 일요목수로 10년의 세월을 쏟아 넣은 집념이 놀랍다.
화제의 인물은 재일 한국인화가 전화황씨.「첼리스트」인 서울대음대 전봉초 교수의 형님으로 65세. 평남 안주태생. 24세에 만주에 있는『일등 원』(일인 서전천향이 이끄는 수도단체)에 들어갔고 종전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와 수전국태낭 화백에게 지도 받아 48년 행동미술상을 받았다.
그 수장 작『군상』은 평범사 간『세계미술전집』28권에 실려있다. 55년 인도「오로빈도」국제대학 주최로 수묵화개인전을 가진 후 이 대학 강사로 초빙 받기도 했다.
60년대에 들어서는 동경·대판·경도·명고옥 등 일본의 주요도시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특히 경도의 유명한 백화점「다까시마야」는 전씨의 개인전을 연례행사로 열정도-.
그는 처음「이틀리에」를 마련하려고 기둥감목재를 하나 둘 사모아 짓기 시작한 것이 전시실까지 확장공사를 하게 됐고 어느덧 10년이 흐른 것이다.
「전화황미술관」얘기를 듣고 찾아 나선 기자가 경도시 외곽의 구조산 역「폼」에 내려서자 바로 길 건너 산비탈에 서투른 솜씨의 엉성(?)한 3층 짜리 건물이 시야에 들어온다. 48평의 대지에다 기초공사만을 전문가에게 맡겼을 뿐 기둥·「블록」쌓기·외벽도장·실내장식에 이르기까지 전씨의 솜씨였다. 전씨 말에 따르면 목수 일은 처음 해봤다고 한다. 미술관입구에는 26년 전에 결혼한 부인 유자여사의 시구가 목판에 써서 걸려있다-『잠자리 빼앗긴 채 오늘밤은 어디로/귀뚜라미의 다사로운 잠자리 찾아 밭고랑의 풀을 뜯는다.』그 동안의 고생담을 집약해 설명해주는 시귀다.
그럼에도 전씨는 두 번째 미술관공사를 다시 착수했다. 근래 일본화단의 인정을 받아 경제적 안정이 됐기 때문에 이번에는 완전히 전문가에게 맡겨 서구「스타일」의「스마트」한 3층집을 짓고 있다.「야마시나」역 근처에 자리잡은 이 집은 맨 위층이 모두 전시장이 된다.
채식주의자인 그의 그림「테마」는 주로 불상. 크고 작은「백제관음상」에다「사천왕상」「아수나상」등이 즐비하다. 그리고 동란을「테마」로 한「피난민」도 몇 점 눈에 띈다. 한 미술평론가는 이렇게 평하고있다.『전씨의 작품주조는 비수의 정태라고나 할까. 자신들이 속해있는 민족의 역사를 형상화하고 있는데 소리높이 외쳐지질 않고 내부 깊숙이 가라앉은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의 심금을 울려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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