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외무성의 한국부실기업 공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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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일본외무성이 중의원에 제출한『한국에 있어서의 부실기업의 실태』보고서의 공개는 이미 지나간 과거에 속하며 정확치도 못한 자료를 가지고 주권국가의 명예를 크게 손상시켰다는 점에서 외교적인 중대사로 발전할지도 모를 일이다.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급속히 이루어진 경협 관계는 필연적으로 일본정부의 한국 내 사정에 대한 관심을 촉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일본정부가 한국의 정치·경제·사회현상을 조사·분석하고 또 평가하는 일은 우리로서 관여할 바가 못되는 것이다. 어느 나라든 외교당사국의 국내사석을 연구하지 않고서는 적절하고도 유효한 외교활동을 벌일 수 없다는 점에서 정보활동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하겠으나 문제는 그것을 일반에 공표 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일본외무성은 외교적인 배려 때문에 정치적으로 문제가 필만한 대목은 삭제하고 이 보고서를 공표 했다고는 하지만, 그 공표가 한국사회의 치부를 노출시키고 타국기업의 국제적 신용에 중대한 손상을 입혔다는 점에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만일 일본정부가 한국의 경제적인 애로나 한국의 대일 의존도를 기화로 해서 그러한 보고서를 공표 했다면 이는 우리정부나 재계로서는 중대관심사로 간주해야 마땅할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한국을 깔보지 않고서는 그러한 노골적인 보고서를 공표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한국의 부실기업에 대해 일본정부나 재계는 책임이 없었던 것이냐 하는 본질적인 사항에 대해 일본측도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 일본의 전후 배상이나 대동남아 경협 파경에서 야기된 부정부패와 사기 극은 너무나 국제적으로 유명하지 않은가. 정치적 부패나 재계와 정계의 밀착을 통한 정치자금의 염출 등 이른바 금권「스캔들」로 말하자면 일본정계야 말로 가장 썩은 곳이 아니겠는가.
일본정부나 재계가 대한 경협을 이권으로 다루지 않았다면 어떻게 해서 한국의 기업이 차관도입과정에서 일본측과 합의해서 20%에 이르는「리베이트」를 떼어낼 수 있었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한 차관을 알면서도 공여 한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의 기업이 출발부터 부실의 씨앗을 내포하도록 협조함으로써 더욱 일본자본에 의존하도록 일본정부나 재계가 이를 조장했다면 한국의 부실기업은 일본측이 유도한 결과라고 보아야할 것이다.
또 한국의 기업은 정치「루트」를 찾아내는 인물이 먼저 이권에 접근 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부실기업발생원인으로서 비경제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이보고서는 평가하고 있는데 차관공여에 있어 채무상환가능성을 제일 먼저 검토해야할 채권자로서의 일본이 부실화를 예상하면서도 그러한 차관을 제공한 것부터가 도덕적으로 옳은 것이 아님은 너무나 분명하다. 왜 그러한 차관을 제공했는지 그 저의가 의심스럽지 않은가.
물론 우리 부실기업발생원인에 대한 일본정부의 평가가 옳건 그르건 우리로서는 그러한 평가를 받게된데 대해서 부끄럽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 동안 차관도입과정에서 많은 잡음과 후문이 국내에서도 일어났었음을 상기할 때, 결코 우리가 떳떳한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정부나 업계는 차관도입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잡음이나 모순을 극력 배제해 나감으로써 떳떳한 경제협력의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요컨대, 국내적으로 떳떳해야할 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통일의존도를 심화시켜서 우리를 얕보게 만들어서는 아니 되겠다는 것이다. 국민적인 긍지와 국가적인 명예를 위해서도 다시는 외국에서 그러한 평가가 내려지지 않도록 우리는 스스로 떳떳해야할 뿐만 아니라 어느 일 국에 만 깊이 의존하지 않는 진정한 자립정신을 가다듬어야 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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