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동종' 걸던 고리만 남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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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가 휩쓸고 간 강원도 양양군의 낙산사. 6일 오전까지도 낙산사 입구는 여전히 잿더미 속에서 검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매캐한 냄새도 여전했다. 밤새워 잔불 정리를 한 인근 부대 소속 500여 명의 군인 얼굴이 검게 그을려 있었다.

잿가루가 날리는 경내에 들어서자 정면에 조개무덤(패총) 같은 기왓장 더미가 나타났다. 다른 절의 대웅전격인 원통보전이 있었던 자리다. 원통보전의 무설전(경전을 가르치는 장소)은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반쪽만 타다 남은 요사채 주위에 널려 있는 냄비와 가스레인지 등을 보고서야 이곳이 승려들의 숙소였음을 알 수 있었다. 그 한가운데는 검게 그을린 7층 석탑(보물 제499호)이 덩그러니 자리를 지켰다.

▶ 6일 강원도 양양군 낙산사를 덮친 산불로 소실된 보물 제479호 '낙산사 동종'의 잔해. 고리부분(점선 안)만 남아 있고 종은 형체도 없이 녹아버렸다. 1469년에 주조된 동종은 조각 수법이 독특하고 아름다워 걸작으로 꼽혀왔다.양양=김성룡 기자

낙산사 관문인 홍예문은 석축 기단만 남았고, 홍예문을 드리웠던 청송은 새까맣게 타 있었다. 사천왕상 옆 범종이 있던 자리는 석주(石柱) 16개만 남긴 채 1m50㎝ 크기의 범종이 잿더미 속에서 뒹굴고 있었다.

문화재 보수.수리 기능 보유자 고윤학(51)씨는 "생각보다 상황이 더 나쁘다"며 "바로 복구를 시작해도 2년 이상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사천왕문을 지나 원통보전으로 오르는 길 오른쪽에 보이던 낙산사 동종(보물 제479호)이 있던 자리에는 타다 남은 조각에 새겨진 보살상이 하늘을 원망스러운 듯 바라보는 것 같았다. 낙산사 동종은 1469년 조선 예종이 아버지 세조를 위해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오전 10시30분쯤 절을 찾은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현재 남아 있는 종 중에 임진왜란 이전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것이 극히 드물다"며 "잔해라도 조심스럽게 옮겨 박물관에 보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절의 소실 소식을 들은 신도들이 하나둘씩 절을 찾고 있는 가운데 스님들은 오전 8시30분부터 해안 절벽에 위치한 홍련암에 모여 절의 재건을 기원하는 기도를 올렸다. 홍련암은 671년 낙산사 창건 당시 의상대사가 제일 먼저 짓게 한 건축물이다.

주지스님 정념은 "수행이 부족해 모두의 재산인 낙산사를 지키지 못해 국민께 송구스럽다"며 "홍련암을 중심으로 절이 신속히 재건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은 이날 화재 현장을 찾아 "한마디로 참담한 심정"이라며 "전국의 2000만 불자가 한마음 한뜻이 돼 조속한 시일 안에 낙산사를 되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장 스님은 "모금 운동을 벌여 조속한 시일 안에 재건 비용을 마련할 예정이며, 조계종에서도 대책반을 구성하는 등 복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곧 경내 정리와 문화재 이전이 마무리되는 대로 재발굴 작업을 거쳐 절을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할 예정이다.

양양=임장혁.김호정 기자 <sthbfh@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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