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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조작 논란, 한·중 정보전쟁 번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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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주한 중국대사관 영사부가 유우성씨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7부로 보낸 등기우편. 안에는 서울고법의 사실조회요청에 대한 13일자 영사부의 중국어 회신과 한글 번역문이 들어 있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증거조작 의혹을 조사 중인 검찰이 조백상 중국 선양 주재 총영사를 22일 참고인으로 소환해 13시간가량 조사했다. 윤갑근 대검 강력부장이 지휘하는 서울중앙지검 진상조사팀은 전날 오전 10시쯤 조 총영사를 불러 오후 11시까지 조사했다고 23일 밝혔다. 검찰은 조 총영사를 상대로 간첩사건 피고인 유우성(34·중국명 류자강)씨의 출입국(중국은 ‘출입경(境)’ 표현)기록 입수 및 전달 과정 등에 선양 주재 총영사관이 관여했는지를 캐물었다.

 이에 대해 조 총영사는 지난 2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한 답변대로 “대검찰청이 요청한 유씨 출입국기록발급 사실확인서 1건만 허룽(和龍)시 공안국에서 영사관 팩스로 받아 정식으로 한국에 전달한 것”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허룽시의 유씨 출입국기록과 산허(三合)세관명의 정황설명서 등 나머지 두 건은 국가정보원 파견 이모 영사가 국정원 측이 입수한 자료를 영사관 공증을 받아 국내로 넘겨줬다는 사후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다고 한다. 이 영사는 국정원 대공수사팀 소속으로 지난해 8월 1심 재판부가 유씨의 간첩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직후 선양 총영사관에 파견됐다. 진상조사팀은 이 영사도 곧 소환 조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이 영사 조사에 착수할 경우 이번 증거조작 의혹 사건 진상조사가 국정원의 중국 지린성 등에서의 정보활동 전반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중국 정부도 상급기관 승인 없이 외국 정보요원과 접촉한 혐의로 허룽시 및 산허세관 직원들에 대한 색출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지면서 한·중 간 정보 전쟁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사실 이 사건 1심 때만 해도 유씨의 출입국기록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산허세관 다리 위쪽에서 물이 얕은 북한 회령시 뱀골초소 인근으로 두만강을 건너 다녔다” “물이 (내) 배꼽 정도며 물살이 세지 않아 넘어진 적이 없다”는 유씨 여동생 유가려(27)씨의 밀입북에 관한 구체적인 진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를 토대로 2006년 5월 하순, 2007년 8월 중순, 2011년 7월 초순, 2012년 1월 네 차례 유씨가 회령시 뱀골초소 인근 두만강을 중국→북한으로 도강하는 방법으로 입북했다고 판단했다. 유씨를 국가보안법상 잠입·탈출 혐의로 기소했다. 또 문제의 2006년 5월 27일~6월 10일 유씨가 회령시 보위부 반탐과장 김철호에게서 간첩교육과 함께 ‘탈북자 신원자료 수집’이란 공작 임무를 받고 돌아와 직접 또는 여동생을 통해 200여 명의 국내 탈북자 신상정보를 넘겨준 혐의(간첩)도 추가해 기소했다.

  하지만 지난해 8월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부장 이범균)가 유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의 유일한 직접 증거가 여동생의 진술인데 이는 공판에서 번복돼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후 국정원은 항소심이 진행 중이던 지난해 10월 중순 유씨가 문제의 2006년 5월 27일~6월 10일 산허세관을 통해 북한을 다녀왔다는 허룽시 공안국명의 출입국기록을 입수해 검찰에 제출했다. 검찰이 이를 “공소사실과는 모순되지만 중국 정부의 관인·공증인까지 찍힌 유력한 증거”라며 항소심 재판부(서울고법)에 제출했다.

그러나 유씨 변호인 측이 발급한 ‘5월 27일 이후 북한을 다녀온 기록이 없다’는 출입국기록과 내용이 배치돼 위조 의혹이 불거졌다. 이런 상황에서 주한 중국대사관 영사부가 지난 13일 “중국 정부 조사 결과 검찰 제출 문서 3개는 모두 위조됐으며 형사책임을 규명하기 위해 상세한 출처를 제공해 달라”는 정식 공문을 담당 재판부에 보내면서 증거조작 논란으로 번졌다.

 현재 국정원 측은 “유씨 출입국기록을 정식 외교 경로로 요청했으나 중국 정부가 거절해 국정원이 나서 입수한 것”이라며 “내용은 위조된 게 아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특히 “국정원의 해외 활동에 대한 중국 정부의 견제가 반영된 사건”이라는 설명도 한다. 최근 국정원 측과 접촉한 혐의로 허룽시 출입국 관리대대장이 파면됐다는 걸 근거로 제시하면서다. 또 “법원에 증거가 위조됐다는 정식 공문이 도착하기 전 주한 중국대사관에 근무하는 친북 성향 외교관이 유씨 변호인단에 먼저 관련 내용을 팩스로 보낸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정효식·심새롬 기자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의혹사건 전개 과정

▶2004년 4월 25일 유우성(중국명 류자강)씨, 중국국적 재북화교임을 숨기고 탈북자로 국내 입국
▶2006년 5월 23~27일 중국 여권 및 통행증으로 고향인 북한 회령시에 가 어머니 장례식 참석
5월 27~6월 10일 '회령 뱀골초소인근 두만강을 도강하는 방법'으로 밀입북. 회령시 보위부로부터 간첩교육받고 탈북자 신원자료 수집 임무부여받았다'(검찰 공소사실)
▶2011년 6월 대학 졸업 후 서울시청 탈북자담당 계약직 특채
▶2013년 1월 10일 국정원, 유씨 여동생(유가려) 탈북자 합동신문 결과를 근거로 오빠 유씨 간첩혐의 구속
2월 26일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 유씨 국가보안법상 간첩·잠입탈출 등 혐의로 구속기소
8월 2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1심), "여동생 진술 신빙성 없다"며 무죄 선고
11월 1일 검찰, 중국 허룽시 공안국 명의 2006년 5월 27~6월10일 유씨 출입국기록 확보해 항소심 재판부 제출
12월 6일 검찰, 허룽시 공안국명의 '출입국기록 발급사실 있다' 사실확인서 제출
12월 20일 서울고법, 주한 중국대사관에 출입국 기록 사실조회신청
▶2014년 2월 13일자 주한 중국대사관 영사부 공식 회신,"검찰이 제출한 3개 문서 모두 중국기관의 공문과 도장 위조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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