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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세계의 한국인-그 입지의 현장을 가다 (27)|검은 대륙에 심는 기와 기 (1)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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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기와 기를 심는다. 최근까지, 아직도, 문명의 그늘로, 검기만한 오지로 알려졌던 「아프리카」 구석구석에 한국의 숨결이 스며든다.
『차리옷』『기옹리에』-힘겹고 어설프게 이색인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한국어 구령이 그처럼 구수할 수 없다. 불끈 쥔 주먹에, 곧게 뻗은 팔뚝에 한국 태권의 기백이 서러 윤기 있고 탄력 있는 검은 피부와 신기한 조화를 이룬다.

<상류층에 「레저·스포츠」로>
아프리카에 태권도가 선을 보인지 햇수로 8년, 이제는 9개국에 뿌리를 내려 태권도 인구만 해도 6만명을 웃돈다. 서부「아프리카」의 「아이버리코스트」를 축으로 「가나」「어트볼타」「나이지리아」「토고」「다오메」「차드」「말리」에 5만4천명, 동부「아프리카」의 「우간다」에서 6천여명이 폐부를 찌르듯 날카로운 기합 소리로 합창을 이룬다. 처음 태권도가 소개될 때 현란한 묘기로 검은 눈망울을 사로잡던 신비스런 무기의 역을 벗어난지도 오래다. 이제는 심신을 수련하는 예로서, 여가를 선용하는 고급 「레저·스포츠」로서 바탕을 다져가고 있다.
한창 유행어가 되다시피 했던 민간 외교란 말이 「아이버리코스트」나 「우간다」에서처럼 실감나게 가슴을 저며 오는 지역도 드물 것이다. 비단 한낱 시정인 뿐 아니라 이 나라의 지도층 인사들이 태권도를 배우고 태권도 사범과의 개인적인 교분을 통해 한국을 알고 또 한국에 대한 이해를 깊이하기 때문이다.
「아이버리코스트」에서는 태권도 사범 김영태 (37) 7단을 「마트·김」이라고 부른다. 굳이 우리말로 옮기자면 김 사범이라는 뜻이겠지만 불어에서 풍기는 이 호칭의 「뉘앙스」는 상당한 존경을 담고 있다. 「우간다」의 김남석 (42) 6단도 마찬가지 뜻에서 「프로페서·김」이라 불린다.'
「아이버리코스트」와 「우간다」에서는 태권도 가정부의 지원을 받아 경찰학교·형무관학교·하사관 학교의 정규 교과목으로 채택되고 있다. 두 나라 모두 정계·사회 각층의 지도층 인사를 임원으로 망라한 태권도 협회까지 조직되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물론 두 김씨의 인고가 결집된 것이라 표현할 길 밖에 없다.

<아민 대통령 특청…시범도>
「아이버리코스트」에서는 독립 기념일 「퍼레이드」에 태권도 특수 부대가 분열 행진을 하고 「우간다」에서는 「이디·아민」 대통령의 특청으로 태권도 시범을 보여 극찬을 받은 끝에 형무관학교의 교관으로 재직중인 김남석씨는 그 자리에서 경찰국장급으로 일계급 특진된 사례까지 있다.
김영태씨가 자리 잡고 있는 「아이버리코스트」 태권도 협회의 경우 발촉한지 2년 남짓한 현재 5만여명이 회원으로 등록하고 있다. 수도인 「아비장」에만 태권도 클럽이 23개소, 지방에는 11개소의 클럽이 흩어져 있다. 협회의 임원진은 이 나라 정계의 요인들이 맡고 있어 태권도를 발판으로한 한국 이미지 부각에 큰 힘이 되고 있다.
임원진을 보면 태권도 협회 명예 회장으로 대통령 다음 제2의 실력자로 일컬어지는 「필립·야세」 국회의장, 회장에는 「우아사난」 보안장관이 맡고 있다. 「우아사난」 보안장관의 경우 자신이 김씨에게 태권도를 배워 2단을 인허 받을 만큼 태권도에 심취한 인물이라 이에 대한 뒷받침이 이만저만 한게 아니다.
그래선지 보안군 하사관학교에서 70년부터 매일 2시간, 경찰학교에서 매일 1시간씩 정규 과목으로 채택, 김씨가 교관으로 출강하고 있다.

<친공국서도 한국 사범 인기>
김영태씨의 활약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70년부터 해마다 가나를 비롯한 「아이버리코스트」주변 7개국에 순회 시범 길에 나서고 있다고 「아비장」에서 태권도를 배워 초단 정도의 솜씨를 연마한 문하생들이 제각기 자기 나라로 돌아가 클럽을 차리고 김씨를 초청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입국을 한사코 거부하는 「말리」 같은 친공 국가에서도 김영태씨의 경우 언제고 출입국 할 수 있을 만큼 요인들과 지면을 넓히고 있다.
「우간다」 김남석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김영태씨에 비해 불안한 정정 등 여건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자신의 원만한 성품을 바탕으로 착실한 기반을 쌓고 있다. 처음부터 「우간다」 정부의 관리로서 고용 계약을 맺고 온 김씨에게는 일반에 대한 태권도 보급이 허용되지 않아 경찰·형무관학교와 군 특수 부대 요원에게만 가르쳐 6천여명의 제자를 배출해 내고 있다.
김씨는 정부가 일반 보급을 허용하지 않고 관리들에게만 단기 교육에 치중하도록 「커리큘럼」을 짜고 있어 태권도의 본 바탕인 예보다는 기의 전수에만 그치는 것을 몹시 안타까와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는 정부 지도급 인사들을 설득하여 73년에 태권도 협회를 조직하는데 성공, 서울에서 열린 세계 태권도 선수권 대회에 「우간다」 대표단을 이끌고 오기도 했다.
「우간다」의 정치 소용돌이로 표면에 나서려는 인물이 없어 태권도 협회장은 형무청 국장인 「에티마」씨가 맡고 있지만 요인들의 뒷받침은 대단하다. 74년8월에는 「이디·아민」 대통령이 태권도 시범을 보고 싶다고 특청, 김씨는 그 동안 길러낸 11명의 유단자를 인솔, 묘기를 보여 그 자리에서 「아민」 대통령으로부터 한 계급 특진의 파격적인 대우를 받았다.
71년이래 이 나라의 경제·관계의 요직을 독점하고 있던 영국·인도인을 축출하며 외국인이라면 관계에 얼씬도 못하게 하던 「아민」 대통령이 어지간히 호감을 갖지 않고서는 이런 대우가 불가능 했으리라는게 현지 한국인들의 감상이다.
숱하게 해외에 흩어져 있는 태권도 사범들, 모두 자기 나름의 의지를 펴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두 김씨는 기보다는 기, 술보다는 예를 보급하는데 주력함으로써 아프리카 깊숙이 「 한국」을 심는다. 비록 정치적으로 「블랙·내셔널리즘」의 돌풍에 휩쓸려 이들 국가로부터 한국이 겸연쩍은 외면을 당하고 있지만 한사람 한사람에게 알알이 들어박히는 한국의 이미지가 국가적 차원의 관계에 친화를 다지는 밑거름으로 되리라 기대된다.
글·사진 김동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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