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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가지 향신료와 만난 말랑말랑 한우 곱창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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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3호 22면

1 곱창카레

솔직히 일본에 가면 맛있는 음식들이 많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서상 내놓고 일본 음식이 맛있다고 칭찬하기가 왠지 좀 꺼려지는 것이 사실이다. 맛있는 것을 맛있다고 얘기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인데 오래된 민족 감정과 아픈 역사에다 국가 문제까지 얽히니 이렇게 애꿎은 음식까지 영향을 받는다. 옛말에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고 했는데 음식은 더구나 그럴 이유가 없을 것 같긴 한데….

주영욱의 이야기가 있는 맛집 <32> 소격동 ‘이방인’의 곱창카레

일본 음식 맛이 발달돼 온 데는 전통적으로 내려온 장인 정신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쳐 왔다는 것이 정설이다. 옛날 막부 시절부터 일본인들을 움직여온 이러한 정신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잇쇼켄메이(一生懸命)’라고 한다. ‘평생 한 가지에 목숨을 걸고 열심히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열심히 하는 데다 100년, 200년이 넘도록 대를 이어서 해오는 음식점들이 많으니 이런 곳들이 맛이 없으면 이상할 지경이다.

특히 인상적인 것 중의 하나가 카레라이스였다. 우리나라의 카레라이스가 맛이 대개 비슷비슷한 데 비해 훨씬 더 맛이 다양하고 깊이가 있었다. 일본이 원조이기도 하고 특유의 장인 정신으로 이미 100여 년 동안 카레의 맛을 연구하고 발전시켜온 결과다. 오늘날 일본은 인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카레의 원료를 많이 소비할 만큼 카레 사랑이 깊어서 그 요리 수준도 높다. 인도의 마살라(Masala)가 영국으로 건너가 커리(Curry)가 되었다가 일본으로 전해지면서 카레(カレー)로 새로운 꽃을 피우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제는 다양한 카레 전문점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일본의 브랜드가 들어온 것도 있고 젊은 요리사들이 공부를 해서 문을 연 곳들도 있다. 그중에서도 아주 독특한 컨셉트로 내 관심을 끈 곳이 있다. 삼청동 부근에 있는 ‘이방인’이라는 작은 식당이다. 이 집은 특이하게도 곱창을 이용해서 카레라이스를 만든다. 곱창과 카레가 어떻게 어울릴 것인지 좀 이상했었는데 막상 먹어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2 이방인 외부 모습. 3 이방인 내부. 사진 주영욱

이곳은 재일동포 3세인 백승호(29)씨가 직접 요리를 하면서 운영하고 있다. 개업한 지 이제 겨우 한 달밖에 안 되었다. 원래 음악을 하는 뮤지션이고 설치미술을 전공한 예술가인데 고등학교 시절부터 아르바이트로 식당에서 일하면서 요리를 배워 벌써 10년이나 되는 무시 못할 내공을 가지고 있었다.

‘곱창 카레’라는 메뉴 아이디어는 어머니 친구 덕분이었다. 일본에 있을 때 식당에서 일하던 그분이 그날 남은 재료를 가지고 카레를 끓여 가져다 줬는데 그 재료가 우연히 곱창이었다. 먹어보니 맛이 있고 독특해서 열심히 연구해 본인만의 메뉴로 개발해 놓은 것이 4~5년 전이다. 2년 전부터 우리나라에 와서 음악과 미술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때 개발한 곱창 카레라이스를 메뉴로 이번에 식당을 열게 되었다.

카레 소스는 강황, 카르다몸, 코리앤더, 후추, 계피 등 15가지의 향신료를 배합해 직접 개발했다. 일본에서 나온 카레 스파이스 책들을 10권 정도 독파한 다음에 나온 결과물이다. 여기에 쇠뼈, 곱창을 넣어서 우려낸 육수와 볶은 양파를 섞어서 함께 끓여 만든다. 그리고 하루 동안 재우면서 숙성시켜 재료들의 맛이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한다. 손님 상에 낼 때는 한우 곱창을 기름이 잘 빠지는 돌판에 바싹 구운 다음 잘라서 이 소스에 섞어낸다.

이렇게 만든 곱창 카레라이스의 맛은 일단 아주 개성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접하는 부드러운 맛의 카레보다는 스파이스의 향이 더 생생하게 살아있고, 곱창 구이가 카레의 맛과 잘 어울리면서 소스 사이에서 말랑말랑하게 씹히는 맛이 좋다. 원래 곱창구이는 좀 느끼한데 카레와 결합하니 전혀 느끼하지 않고 맛이 더 살아난다. ‘고시히까리’라는 일본 품종의 고급 쌀을 사용해 차지게 짓는 밥은 카레의 맛을 잘 받쳐준다. 생긴 지 얼마 안 되는 식당이고 정식 요리사가 하는 곳은 아니지만 그래도 충분히 깊은 내공이 느껴지는 맛있는 카레라이스다.

‘이방인’이라는 상호는 일본과 한국 어디에도 제대로 속하지 못하는 재일동포 3세로서의 백승호씨 자신을 의미한다고 한다. 슬픈 역사의 피해자인 셈인데 이렇게 씩씩하게 모국에서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일어서려는 모습이 당당하고 멋져 보였다. 그리고 이제 시작이지만 카레의 맛을 보아하니 이 이방인에게는 좋은 한국 친구들이 금세 많이 생길 것 같아서 다행스러웠다.

**이방인: 서울 종로구 소격동 102-2번지 전화 070-8251-3779 현재는 월요일과 화요일이 휴무인데 3월부터는 월요일만 쉰다. 전화로 확인하고 가는 것이 좋다. 낮 12시부터 시작한다. 곱창카레 1만2000원.



음식·사진·여행을 좋아하는 문화 유목민. 마음이 담긴 음식이 맛있다고 생각한다. 마케팅 전문가이자 여행전문가. 경영학 박사. 베스트레블 대표. yeongjyw@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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