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득의 패러디 파라다이스] 오대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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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3호 30면

대수냐? 지금 통화할 수 있냐? 바쁜 시간 아니고. 서울은 아직도 많이 춥지? 통풍은 좀 어떠냐? 병원엔 계속 다니는 거야? 제발 음식 가려 먹고 운동 많이 해. 과식하지 말고. 너희 집에는 별일 없지? 아이들도 잘 크고.
나는 잘 있다. 내 걱정일랑 하지 마라. 섬이 사람 살기엔 그만이야. 공기 맑고 물 좋고 사람들 친절하고. 지금 나는 모든 사람의 동의를 얻으며 잘 지내고, 지금 모두가 나를 반가이 맞이하며 마치 고향에 온 것처럼 지내. 여긴 남쪽이라 따뜻해. 이번 겨울 내내 보일러도 거의 안 틀었어. 혼자 있는데 1인용 전기장판 켜 놓으면 그만이지. 아주 추우면 잠깐 틀고. 기름값이 많이 드니까. 너도 참, 돈이 대수지, 그럼 뭐가 대수냐?

밥은 삼시세끼 꼬박꼬박 잘 먹는다. 도시 있을 때보다 더 잘 먹어. 여긴 온통 무공해 농산물이고 해산물 아니냐. 잠도 잘 잔다. 늙은 육체는 조금만 기울어져도 잠들게 되는 법이야. 교회에 매주 간다. 일요일에 큰길까지 나가면 거기 차가 와. 집에만 있으면 사람 소리도 그립고 그래서 나가는 거지. 목사님 음성도 듣기 좋고. 경로당엔 안 가. 한두 번 가봤는데 거기서 내가 나이도 제일 어려서 불편해. 편하게 누울 수도 없고.

어미 몸은 좀 어떠냐? 아픈 사람은 작은 일에도 서운해지는 법이다. 사소한 일이라도 도와주고 마음 써주고. 같이 사는 건 내가 싫다. 어미 몸도 아픈데 나까지 짐이 되고 싶은 생각 없다. 이렇게 따로 사는 게 좋아. 남의 눈? 아버지의 무덤은 정말 큰 눈이지. 하지만 누구든 되도록 신경 쓰지 않고 사는 게 최선이다. 다른 사람 눈을 의식하며 살 필요 없다. 네가 내 말을 따르겠다면 너는 너의 것을, 나는 또 내 것을 견뎌내는 게 가장 쉬운 일이 될 것이야.

대수야, 사실 밥을 제대로 못 먹겠어. 속이 안 좋아. 잠도 잘 못 자. 누우면 절해고도 적막강산이야. 밤에 부는 바람소리가 싫어야. 온갖 생각이 떠올라서 말이야. 네 아버지 생각도 나고. 대수 너는 네 아버지 이야기만 나오면 왜 그렇게 화를 내? 너는 나의 성정을 꾸짖지만, 함께 살고 있는 너의 것은 알아보지 못한 채 나를 비난하고 있구나.

내 배가 아픈 이유? 너 자신의 삶을 조금이라도 걱정한다면 제발 그것을 추적하지 마. 나는 충분히 고통을 겪고 있어. 지난달 너희들 와서 회 먹으러 갔잖아. 내가 회를 좋아하긴 해도 사실 그 전날부터 속이 불편해서 그냥 집에서 먹는 게 좋은데 네 기분 망칠까 싶어 나섰지. 억지로 몇 점 먹었더니 늙은 속에 체했는지 거진 보름을 앓았어야.

뒷집에 나보다 두 살 더 잡순 할머니가 가끔 놀러 와. 그 할머니 자식들도 다 서울 살아. 그 할머니 형편이 나보다 조금도 더 그렇지 않고, 꼭 나만큼만 그렇지. 그래도 그 할머니 작년 가을에 유럽여행 갔다 왔어야. 나는 그런 것 싫어. 집이 편하지. 도시도, 성탑도, 신들의 신성한 조각상들도 보고 싶지 않아. 외국이라고 가봐야 고생만 할 걸.

참, 통풍에 해산물이 안 좋다던데 너는 그날 왜 회를 먹자고 한 거니? 먹기는 왜 그렇게 많이 먹고. 넌 어릴 때부터 식탐이 많았어야. 모든 불행이 그렇단다. 너 자신이 너에게 재앙이다. 대수야, 제발 뱃살 좀 빼거라. 항상 널 위해 기도하마. 그런데 유럽여행 돈이 많이 들겠지?

** 컬러 부분은 모두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장이다. 눈물과 웃음이 꼬물꼬물 묻어나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 『아내를 탐하다』 『슈슈』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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