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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분 올림픽 → 즐기는 올림픽 소치에서 ‘2018 평창’의 희망 봤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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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3호 01면

끝이 좋아야 진짜 좋다고 했나. 실망은 결국 희망으로 진화했다. 논란과 분란은 포용과 화해 뒤로 밀려났다.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 초반, 기대 종목이었던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의 부진은 냉소와 자조를 불렀다. 러시아로 귀화한 빅토르 안(29·안현수)의 선전은 한국 체육계의 ‘파벌 논란’으로 이어지며 우리 사회의 치부를 드러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국민들은 스포트라이트에서 비껴 서 있던 다른 국가대표들에게 큰 박수를 보냈다. 이상화가 올림픽 2연패로 국민들을 위로하는 사이, 무명의 여자 컬링 대표팀은 강호들과의 경기에서 주눅들지 않는 모습으로 시선을 모았다. 메달을 기대하기 어려운 스키나 썰매(루지, 봅슬레이)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6회 연속 올림픽에 출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한, 그러나 더 이상 시상대에는 서지 못한 스피드스케이팅 이규혁(36·서울시청)에게도 찬사가 쏟아졌다. 국가별 메달 순위와 애국심에 대한 과도한 집착도, 부진한 선수에 대한 힐난도 눈에 띄게 줄었다. 갓 스물을 넘긴 스노보드, 모굴스키 선수들은 선수촌 곳곳을 누비며 SNS 등으로 팬들과 얘기를 나눴다. 지구촌 축제 자체를 ‘누리는’ 신세대 올림피언의 출현이다.

편파 판정 논란 속에 2위를 한 여자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24)는 “최선을 다했고 잘했기 때문에 만족한다. 금메달을 목표로 온 게 아니기 때문에 괜찮다”고 말했다. 인터넷에선 ‘연아야. 고마워’ 릴레이가 펼쳐졌다. 또 빅토르 안은 자신 때문에 빚어진 한국 사회의 분란을 누그러뜨리려 했다. 그는 22일(한국시간) 기자회견에서 “파벌이 러시아로 귀화한 결정적 이유는 아니다. 내 성적이 한국선수들의 부진과 맞물리면서 올림픽 기간 내내 힘들었다”고 했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이번 대회를 계기로 올림픽에 대한 선수와 국민의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많다. 조수경 스포츠심리연구소장은 “1등 지상주의, 스펙주의의 압박 속에서 ‘나만의 행복과 즐거움을 찾고 싶다’는 젊은 선수, 관중들의 욕구가 발현됐다”고 말했다. 그는 “강압적인 틀에 맞추지 않아도 훌륭한 경기력을 보여주는 스타들이 등장하면서 국가주의 올림픽의 프레임이 깨지기 시작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질타 등 정치권이 국가주의의 틀 속에서 ‘안현수 현상’에 대응한 것을 두고 반발심리가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성신여대 심리학과 채규만 교수는 “정부가 ‘안현수 현상’을 체육계만의 부조리로 몰고 가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라며 “좌절한 개인이 새로운 기회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보는 게 국민들에게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것 같다”고 말했다.

올림픽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면서 2018 평창 겨울올림픽에 대한 기대감도 커졌다. 스포츠 자체를 즐기는 국민이 많아질수록 올림픽 분위기가 더 달궈질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대회 막바지까지 지켜본 국민들의 응원에 화답하듯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은 22일(한국시간) 낭보를 전했다. 여자 1000m에서 박승희(22·화성시청)가 금메달을, 심석희(17·세화여고)는 동메달을 땄다. 500m 결승에서 넘어져 아쉬움을 남겼던 박승희는 3000m 계주에 이어 2관왕에 올랐다. 빅토르 안은 남자 500m와 5000m 계주에서 모두 우승하며 1000m 금메달을 포함해 3관왕이 됐다. 한국 대표로 출전했던 2006년 토리노 올림픽에서도 그는 3관왕이었다. 겨울올림픽 사상 최다 금메달리스트, 최다 메달리스트(금6, 동2)의 기록도 세웠다.

이승훈(26·대한항공), 주형준(23·한국체대), 김철민(22·한국체대)으로 구성된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팀추월 대표팀은 결승에 올라 네덜란드와 실력을 겨뤘다. 대표팀은 준결승에서 3분42초32의 기록으로 지난 대회에서 우승한 캐나다보다 2초가량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1만m에서 4위로 아쉽게 메달을 놓쳤던 이승훈은 팀을 이끌며 혼신의 역주를 펼쳤다. 이번 올림픽은 24일 새벽 1시(한국시간) 폐막식을 끝으로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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