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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박재릉<시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박재삼의『어미바위 새끼바위』(월간중앙), 이성부의『슬라이딩 태클』(한국문학), 이시영의『각설이』(창작과 비평)등을 흥미있게 읽었다.
박재삼의『어미바위 새끼바위』는 그의 미세한 선율적 감각이 여전하게 드러나고 있는데 시각적「이미지」도 아울러 곁들여져 재미있게 읽힌다. <아까 썰물 졌을 때는 어미바위가 새끼 바위들을 더불고 햇볕 속 나들이를 하고 있더니><어떤 것은 반쯤 눈만 내놓고 또 어떤 이마만 흔들리고 있는걸 보면 어미 닭이 병아리를 품고 있는 것 같다>에서 바위를 어미·새끼 혹은 닭과 병아리로 유추한 점이 그것이다.
시 자체의 허점을 미세한 선율이 잘 가리고 있는데 읽는데도 부담을 느끼지 않게 하고 있다. 물론 이 시는 그의 서정의 일환이라 여겨지며 새로운 어떤 변화된 모습을 제시한 것은 아니다. 근래에 와서 한층 지적인 기교에 다가서는 듯도 하지만 이제는 과감한 탈각의 모습이 보여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이성부의『슬라이딩 태클』역시 그 소재가 현실적인 것인 만큼 쉽게 읽혀진다. 얼른 보아선 소재들을 막연하게 늘어놓은 것 같으면서도 내면의 자기 존재의식이 자리잡고 있어「포에지」를 이룩해 내고 있다. 「이미지」가 아쉽게 느껴지지만 그와 같은 자신의 의식이 철학적 속성을 갖고 그것을 보편화하는데 한층 주력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가슴도 어느 사이 남의 가슴으로 뛰는 거야>와 같은 인상적인 귀절과 더불어 종연의 <이 마지막 남은 칼 이 부끄럽지 않은 몸짓!>이 전체관념을 하나의 시점으로 집약시키고 있다.
이시영의『각설이』는 소재에 퍽 호감이 간다. 토속적인 저변의 자료들을 현대 감각적인「톤」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 <청내꼴 그 양반 왔네 들판에 널린 뼈를 덮는 진눈깨비 속을 지게에 업혀 떠난 것이 엊그제 같더니>등의 독자적이라 볼 수 있는 정서감과 <두 눈이 패고 다리 부러져 동네를 쫓겨나서도 떨리는 지팡이로 앞산 찾더니>등의 굵은「톤」이 건전하게 들린다. 같은 지면에 실린『귀향』역시 이런 관점으로 볼 수 있는데『귀향』의 경우는 한층 그「톤」이 경쾌롭게 진행된다.
그러나 그런 향방으로 보다 심화할 문제와 체계화된 자기철학을 형성함으로써 시 세계를 이룩할 과제가 있다.
함홍근의『오늘 우리들의 옷』(현대문학), 김정우의『우중에서』(현대시학), 유제하의『변조』(현대문학), 김연균의『부두에서』(현대문학)도 관심을 끌었다. 함홍근의『오늘 우리들의 옷』은 언어화술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가령 <숨찬 햇살이 눈썹 밑으로 떼지어 몰려와서><구름의 행렬이 일어서서 흰 적삼을 벗어 들고> 등은 그러한 느낌을 주긴 하나 전체적인「포에지」의 결합이 아쉬웠다.
김정우의『우중에서』는 자신의 내면을 현실에다 유기화 함으로써 이채적인 지성을 풍기고 있다. <울음 속에서 빗속에서 너를 기다려 섰는 내 흐린 시야를 검은 우산들이 겹겹이 둘러서서>의 종연에서 보이는「기다림」과「우산」과의 유기적 관계가 건전한「이미지」를 형성해 내고 있다. 유제하는 관조적 미의 구축으로, 김연균은 현대적인 오뇌를 박력있는「톤」으로 각기 특성을 구사하고 있다.
기타 김성영의『흙(37)』(한국문학), 설의응의『숲』(현대시학)이 문제성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김성영의『흙(37)』은 우리 저변의 토착적인 정서를 펼치고 있다. 시대감각과 아랑곳 않는 그의 저의가 어쩌면 소외감을 갖게 될지 몰라도 보다 원시안목으로 볼 때 우리 전통의 내밀을 발굴한다는 의의로 생각한다면 그 기대는 적지 않을 것이다. 다만 단순한 감각보다는 폭넓은 세계를 탐구해야 할 것이다.
설의응의『숲』은 내면을 현실에다 부합시키면서 미적 추구에 관심을 갖는 것 같다.
아직은 그의 방향이 다각도이긴 하나 시집『소나기』에서 보인 우리 고대설화의 현실화는 주목되는 바가 있다. 계속 그 세계에 대한 탐구가 남아 있는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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