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갔다 서울 온 류전민 "핵실험 반대 전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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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정부 서울청사에서 만난 이경수 외교부 차관보(오른쪽)와 류전민 중국 외교부 아주담당 부부장. 류 부부장은 오늘(22일) 윤병세 외교장관을 만날 예정이다. [로이터=뉴스1]

지난 17일부터 나흘간 북한을 방문한 류전민(劉振民) 중국 외교부 아주담당 부부장(차관급)이 “최근 남북관계의 훈풍을 이용해 6자회담의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는 중국 측의 메시지를 들고 방한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21일 외교부 이경수 차관보를 만난 류 부부장이 “6자회담을 위해 북측에 한반도 긴장을 유발하는 행동을 자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며 “북한도 남북관계 증진을 기대하는 만큼 지역 평화와 안정을 위해 서로 긍정적 요소를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류 부부장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유일영도체제가 확립돼 안정적인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에 추가 핵실험이나 미사일 실험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명백히 했다”고 덧붙였다고 한다.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20일 “한반도에서 전쟁과 혼란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입장을 (류 부부장이 북한에) 전달했다”며 “한반도 비핵화와 안정, 그리고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 원칙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화 대변인에 따르면 류 부부장은 “앞으로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와 안정, 6자회담 재개를 위해 중국의 독자적 방법으로 부단히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은 이에 대해 “한반도 비핵화 실현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총서기의 유훈이며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라며 “우리는 6자회담 재개를 위해 노력하고 한반도 평화를 위해 공동 노력할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류 부부장은 장성택 처형 사태 후 북한을 방문한 중국 최고위급 인사다. 방북 중 박의춘 외상, 6자회담 북한 측 수석 대표인 김형준, 이용호 부상 등과 회담했다. 방북 직후 중국 측 고위 인사가 한국을 연쇄적으로 방문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류 부부장의 방한은 미·중(14~15일), 북·중(17~20일) 대화에 이어 곧바로 벌어진 한·중 고위급 대화이기도 하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14일 베이징에서 “미·중 양국이 북한 비핵화 촉진과 관련한 서로의 안(案)을 제시했다”며 “북핵 프로그램을 중단하지 않을 경우 중국은 북한에 추가 조치를 할 준비가 돼 있다는 뜻을 보였다”고 밝혔다. 류 부부장은 이런 미·중 간 협의 결과를 북한에 전달한 셈이다. 중국을 매개로 남·북·미 4자가 메시지를 교환하고 있는 양상이다.

 남북 고위급 회담 재개, 이산가족 상봉 등 남북 간 대치가 완화되는 상황에서 이런 중국의 중재 움직임이 북핵 문제 해결의 단초로 이어질지 전문가들은 주목하고 있다.

 황지환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 후 남북접촉, 북·미 접촉, 6자회담으로 나아가는 3단계 그림을 그릴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정부는 20일 유진벨 재단 등의 10억 6000만원 상당의 대북 인도적 지원을 승인하는 한편 24일부터 예정된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축소해 로키(Low-key)로 가져가면서 북한의 진정성 있는 변화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북한이 돌발적 행동을 하지 않도록 촉구하는 동시에 대화 국면의 긍정적인 요소는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류 부부장은 22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류길재 통일부 장관, 청와대 주철기 외교안보 수석을 예방한 후 돌아간다.

베이징=최형규 특파원, 서울=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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