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투표… 외국의 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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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근년에 있은 국민투표의 예는 「아시아」에서 한국 「필리핀」 「버마」,서구에서 「프랑스」와 「그리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모두가 민주제도가 확립되어 있지 않거나 국가 중대사를 결정하는 경우에 실시되었다. 「프랑스」와 「그리스」에서 상당수의 부표가 나온 반면 「아시아」 국가에서는 모두 압도적인 찬표가 나왔다는 사실이 주목을 끈다. 각국의 국민투표 사례를 살펴본다. <외신부>
▲프랑스 공화제가 먼저 발달한 「프랑스」에서는 일찍부터 국민투표 제도가 애용되었다. 1789년의 대혁명 후 「나폴레옹」은 세 차례의 국민투표 끝에 1804년 황제에 올랐고 1852년 제2공화제 후 「루이·나폴레옹」도 이 투표로 황제가 되었다.
제2차 대전 후인 1945년 제4공화국이 발족할 당시 신 헌법이 국민투표에 붙여졌는데 5월의 투표에서 부결되었으나 10월의 재투표에서 승인되었다.
1958년에 집권한 「드골」은 재임 11년 동안 모두 다섯 차례의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처음은 58년 9월 28일 제5공화국 헌법을 국민투표에 붙여 지지율 68.26%로 승리했고 61년 1월 「알제리」 자결 문제(지지 75.26%), 62년 4월 「알제리」 평화 협정 문제(지지 90.7%), 62년 10월 대통령 직선제를 포함한 헌법 개정(지지 62.25%) 등에서 각각 승리했다. 그러나 69년 4월 지방 자치제와 상원의 개혁에 관한 국민투표에서 46.82%의 지지로 패해 결국 「드골」은 하야하고 말았다.
이는 국민투표로 정권이 패한 희귀한 예가 되었다.
▲버마 「버마」의 「네·윈」 수상은 「우·누」 정권을 「쿠데타」로 쓰러뜨리고 정권을 탈취한 지 만12년이 되는 73년 12월 15일부터 31일까지 국민투표를 실시, 『「버마」 사회주의』 체제를 강화하는 새 헌법을 채택했다.
영화배우와 작가 「커미디언」 등을 동원한 「센세이셔널」한 투표 참가 고취 운동을 통해 이 국민투표는 90.19%의 지지를 받았다. 이 헌법은 모든 생산 수단의 국유화 등 사회주의 강령 이외에 「네·윈」이 창설한 「버마」 사회당을 유일 합법 정당으로 규정함으로써 12년 전 「쿠데타」와 함께 모든 정당 활동을 금지시켰던 조처에 합법성을 부여했다.
「네·윈」은 국민투표 후 명목상의 민정 이양을 했으며 곧 이어 21명의 사형수를 포함한 5천7백17명의 복역수들에게 「민정 이양」을 축하하는 뜻으로 특사를 베풀었다.
▲필리핀 72년 9월 공산 반도의 위협을 이유로 의회를 해산하고 계엄 통치를 실시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은 73년 1월과 7월에 국민투표를 실시하고 계엄 통치의 계속과「마르코스」 자신의 임기를 임기 완료 기일인 73년말 이후로 연장하는 문제에 관한 국민의 의사를 물었다. 이 투표 결과는 찬성90%로 나타났다.
이 국민투표는 국민 개인 단위로 실시되지 않고 「마르크스」 행정부가 조직한 시민 의회(바랑가이)에서 실시되었기 때문에 반대파 인사들은 그 효력을 부인해 왔다.
74년 한햇 동안 2년간의 계엄 통치와 거기서 파생되는 온갖 민권 탄압 사례에 대한 반발이 격렬히 일자 「마르코스」는 다시 금년 2월 27일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공표했다.
이번 국민투표는 현 체제 유지 이외에 지방 관리들을 대통령이 임명할 것인지 아니면 선거를 통해 뽑을 것인지를 아울러 묻게 되며 과거와는 달리 투표전 2주 동안 국민투표에 관한 자유로운 토론이 허용된다고 발표되었다. 그러나 기권자는 구속할 것이라는 광고가 은밀히 나들고 있고 부표를 던지는 자는 군에서 색출해 낼 것이라는 풍문이 돌아 이번에도 압도적인 찬표가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그리스 지난 1백 40여 년간 왕정을 실시해 오던 「그리스」는 67년 「게오르기오스·파파도풀로스」 대령이 「쿠데타」를 일으켜 헌정을 폐지, 군사 독재를 폈다. 「파파도풀로스」 군사 정부 수반은 73년 6년 입헌군주제를 폐지, 대통령제 공화국 수립을 선포하고 자신이 초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러나 「키프로스」 사태를 계기로 「터키」와의 충돌 등으로 더 이상 집권할 수 없어 민정 이양을 결정, 망명 중이던 「카라만리스」전 수상이 과도정부를 구성하여 잠정 정권을 수립했다.
「카라만리스」 정부는 총선을 실시, 의회를 구성한 후 지난해 12월 와정 폐지 여부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그리스」 국민들은 1952년의 헌법 개정도 아울러 규정하고 있는 이 국민투표에서 73%의 찬성으로 군주제 부활을 부결시키고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 진정한 민주 체제의 회복을 이룩했다.
▲이탈리아 「이탈리아」는 74년 5월 12일 4년 전(70년)에 제정한 이혼법의 폐기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 59.1%대 40.9%로 현 이혼법을 존속시키기로 했었다. 국민의 99.6%가「가톨릭」 신도인 「이탈리아」는 지난 70년 전까지만 해도 교리에 따라 이혼을 법률로 금해 별거 중인 수십만 명의 부부들이 중혼죄로 처벌받을 것을 우려, 불안한 사생활을 해 왔다.
이러한 법 때문에 여배우 「소피아·로렌」이 중혼죄로 구속됐던 것은 유명한 이야기.
이에 70년 「이탈리아」 의회는 교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혼법을 제정, 이혼을 합법화했었다. 그러나 법 실시 4년만에 교황청이 중심이 된 「가톨릭」세력은 이혼법을 「타락한 법률」로 규정, 신도 1백60만 명의 서명을 얻어 헌법재판소에 이 법의 존속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발의했다. 투표 결과 이혼법이 존속하게 되자 폐기를 주장했던 집권당인 「루모르」현 내각은 한때 정권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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